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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Nov 29. 2020

누군가에게 간절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해 절망하는 당신에게

나는 어렸을 적 키가 무척 작고 깡말랐었다.

게다가 얼굴도 엄청나게 하얗다 못해 창백했던 편이라 어떤 아이들은 나를 아픈 사람 같다고 놀리기도 했다.

키 순으로 줄을 서면 늘 반에서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를 도맡았었다.


그때 내 소원은 키가 크는 것이었다.


키가 큰 친구들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나는 키가 큰 것에 대한 장단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키가 크고 체격이 좀 다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들을 올려다보는 것에 익숙해지던 중학교 2학년.

갑자기 성장기가 찾아왔고 얼마 되지 않는 여름방학 동안 키가 갑자기 10센티 이상 쑥 커버렸다.

방학이 끝나자 나는 내가 올려다보던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렇게 키가 커서 눈높이가 달라지자 기분이 좋았다.

평생 나는 키가 안 클 줄 알았는데 소원성취를 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박시한 옷이 유행을 탔다.

윗옷을 한두 사이즈 늘려 입어, 어깨선은 어깨를 넘기고 엉덩이를 덮는 게 유행이었다.

그때 나는 아담한 체구의 친구들을 부러워 하기 시작했다.


아담한 친구들은 사이즈를 늘려 입어도 뭔가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 나는데, 키가 170센티가 된 내가 같은 스타일로 입으려면 꽤 거대한 사이즈의 옷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길쭉한 데다 옆으로도 큰 옷자락이 펄럭거리니, 내가 원하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또 체구가 작은 친구들은 뭘 해도 보호본능을 일으키고 귀여워 보이는데, 나는 주변 남자인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런 작은 친구들을 지켜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고는 했다.

힐이라도 신는 날이면, 몇몇 남자들은 내 곁에 다가오는 걸 피하고는 했다.

그러자 아담한 체구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언젠가 내가 간절히 원했던 키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린 흔히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게 어떤 것이든지.

거창한 것일 수도 있고,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돈, 직업, 나이, 외모, 아니면 배우자.

아니면 오늘 잠들 수 있는 집이나 당장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돈 같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일상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는 가져서 불평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우리는 때때로 가지지 못한 것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고서, 무작정 가지지 못한 것을 선망하며 슬퍼한다.

왜 나는 가지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미 충만하게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은 경히 여긴다.


물론 가치를 두는 곳과 관점의 차이는 존재하기에 내게 너무나도 간절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고.

하지만 때로는 빈 곳에 시선을 두고 손에 가득 쥐고 있는 소중한 것을 망각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것일 수도 있는데.


가지고 또 가져도 부러움이 존재하는 삶이라면, 무언가의 부재가 나를 불행하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나 자신.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 마음.


끊임없이 비교하고, 내가 가진 것은 내팽개치고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내가 무언가를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귀하게 여기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미 가진 것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데, 거기에 새로운 무언가가 더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게 무엇일까?


먼저 내가 쥐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그렇게 만족감이 충만해지면 어쩌면 내가 필요하다 느끼고 절실하다 느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기에 그것이 사실은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도 있다.


원인이 되는 내 마음의 갈망을 채우지 않고 겉으로만 필요로 하는 곳을 채우려 노력한다면, 결국 나는 끊임없이 목마르게 될 것이다.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그저 그 주변만 빙빙 도는 인생을 살게 될지도.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것.

또 그것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임을 인정하고 그런 소중한 것을 가진 축복에 감사하는 것.


때로는 이런 삶의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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