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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Dec 03. 2020

거창하기보다는 소소하게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쟁취해내는 멋진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이 쉽게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의 행보를 보며 언젠가 나는 더 큰 사람이 되리라 꿈을 꾸었다.

세상을 모두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의 일부라도 바꿔보리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갑자기 졸업을 통해 벗어나 사회에 던져졌다.

내 원대한 꿈과 현실의 괴리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는 나를 다그쳤다.

쉬지 않고 계속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다는, 자기 계발서에서 언젠가 본 문장을 되새기며.


할 수 있다는 말로 나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내가 목표로 한 것에 내가 미치지 못하면 또 채찍질했다.

나는 조급해졌고, 그건 안 그래도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몸도 안 좋아졌다.


쉼 없는 채찍질이 독이 된 것일까.

자각하기도 전에 내가 많이 아팠다.


늘 패배자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나는 평생 노력해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할 뿐일 거라는 마음이 가득해져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주변인들에 비해 앞서는 게 익숙해져 있었는데, 어느새 나를 지나서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자괴감은 더 들었다.


어느 날 거리를 걸어가다 바람 때문에 바닥 위를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보는데, 저 쓰레기가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으며 눈물이 고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오늘 당장 사라져도 아무도 개의치 않아할 존재.

동시에 딱 죽어버리면 좋겠다 싶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죽고 싶어야 하나.

분명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깔깔 웃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우울증을 가진채 잘 살아내기 위해 전문가를 통해 배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내게 가장 잘 맞았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거창한 꿈을 꾸지 않고 소소한 것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내게 긴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


그날 거창하게 꾸고 있던 꿈들을 모두 지웠다.

세상을 바꾸기 이전에 내 마음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또 부수적이게 나를 평가하던 잣대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연봉, 직업, 그리고 관계 등등.


그냥 나의 오늘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 침대에서 너무 긴 시간을 보내지 않고 일어나는 것, 오늘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것, 오늘 샤워를 하는 것, 그리고 오늘 산책을 나가서 상쾌한 공기를 쐐는 것.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그걸 이뤄낸 나를 보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내 옛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에 그런 일상이 하찮아 보였지만, 하다 보니 점점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자신감도 생기며 조금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을 했으나, 오히려 다시 관성처럼 우울증에 더 얽매이는 자신을 보며 나는 더 우울해졌다.

며칠이면, 몇 주면, 몇 달이면, 그리고 몇 년이면 되겠지.


내 생각으로 기한을 정해두고 나는 반드시 그 안에 이걸 극복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계속 가졌다.

그런데 그럴수록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보며 나는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나를 기다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십 년이 되고, 이십 년이 되고, 그리고 평생이 되도록 나는 스스로를 기다려주고 인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매일에만 집중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보면서 타인과 자꾸 비교를 하며 초조한 마음을 먹게 되는 SNS도 끊고 오롯이 내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한 달, 일 년.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시간을 재지 않고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매일마다 체크하는 걸 멈췄고 그저 그 순간에 집중했다.


내 앞에 있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물이 얼마나 따뜻한지, 그리고 산책길 구석에 핀 꽃이 얼마나 예쁜지.

내가 가진 것과 내 곁에 있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에 집중하며 조금씩 웃고 행복감을 느꼈다.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 우울증이 찾아온 날부터 지금까지 순간을 돌아보니, 내 마음가짐이 얼마나 달라졌고 스스로가 얼마나 건강해져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완벽히 나아진 것도 아니고, 큰일을 이룰 만큼 거창한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무언가 달라졌고 단단해졌다는 게 느껴진다.


비록 사회적으로 보기에는 남들보다 뒤처졌을지라도, 나의 내면은 분명 이전보다 앞으로, 꾸준히 나아갔음을 느낀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분명 나만의 속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늦었다 해도 내가 나에게 시간을 허락한다면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테니.


인생에 거창한 것 없어도 뭐가 어떨까.

평균 수명을 생각해보면 내게 남은 시간은 길고, 무언가 이루기 전에 내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그저 오늘 하루 많이 웃고 행복하고 감사하는 삶도 나쁘지 않다.


세상에는 거창한 것을 이뤄내는 대단한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소소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내기로 한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도 좋지만, 내가 무너지지 않게 나 스스로를 돌보는 삶도 꽤 나쁘지는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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