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관계를 하다 평생 실망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실망을 하고 나면 이럴 줄 몰랐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깊은 실망감을 애써 억누르고 관계를 이어 나가거나 관계의 방향을 조금 틀기도 하고, 아니면 관계를 끊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망을 한 직후에는 상대방의 단점을 탓하고는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실망은 양면인 동전 같기도 하다.
기대가 반대편에 새겨져 있는 동전.
둘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애초에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하는 게 가능하다.
상대방을 향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면 실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실망을 시킨 상대방을 탓할 게 아니라 그를 향해 지나친 기대감을 품고 있던 나를 어느 정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배신감에 치를 떨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이를 갈며 나를 갉아먹을 바에, 지나친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나의 순수함을 탓하는 게 차라리 속이 덜 쓰리다.
실망이라는 쓴 감정을 진하게 느끼는 지금,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니까.
만약에 앞으로 또 똑같은 일을 겪게 되어 또 아프지 않기 위해서 당장 입에는 조금 쓰지만, 이게 제일인 듯하다.
기대하지 말자.
대신 눈 앞에 있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힘껏 즐기고, 또 후회 없이 보내자.
미래를 생각하며 기대하지도 말고, 과거에 내가 해준 것을 생각하며 돌려받는 걸 기대하지 말고.
그저 현재.
지금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만 생각하자.
설령 그가 미래에 나를 떠날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와 인연이 아니었지만 값진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나는 이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관계에 임했던 태도에 대해 만족할 정도로.
기대와 실망이 함께 양면에 찍힌 동전은 손에서 이만 놓고 싶다.
자꾸 그 동전을 손에 꼭 쥐면 쥘수록 쇠 냄새만 나고, 내 손에 그 불쾌한 냄새가 배일뿐이다.
그리고 이 동전을 손에 꼭 쥐고 있는 이상 상대방을 향해 덤으로 가지고 있던 원망의 마음도 나를 쉬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정도 했으니 이 정도는 돌려받아야 해, 라는
보상심리가 담긴 기대감은 이만 고이 접어두자.
돌아올 주인만 애타게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상대방이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하며 간절히 구는 건 그만하기로 하자.
나는 홀로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 달랠 능력이 있는 건강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쇠 냄새가 진동하는 동전 따위는 버리자.
더는 실망의 냄새가 내 손에 배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