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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Dec 02. 2020

미련하지만 값어치가 없다 할 수 없는

사랑.


흔히들 남녀 간 뜨겁게 끓어오르는 감정과 열정적인 스킨십이 어우러져야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완성된다 믿는다.

그것이 완벽한 사랑의 모습이라 믿는다.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사랑이 그렇게 뜨겁고 한순간 끓어 올라 넘치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모습의 사랑이 존재한다.


하얗게 머리가 새서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만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노부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아이.

힘들어서 울고 있는 이와 함께 울며 위로해 주는 친구.

가난하거나 병든 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서서 돕는 봉사자.

반려견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견주.


이들의 모습에는 저마다의 사랑이 녹아들어 있다.

결코 사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진귀한 광경이다.


사랑에는 희생이 있다.

득과 실을 따지며 이성적이게 될 수 없는 그런 부분이 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잔잔하고도 간한 울림 같은 진심.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순수함이 그 안에 녹아들어 있다.

계산은커녕, 자신의 것을 더 내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성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미련하게만 보인다.

기브 앤 테이크와 적당한 선이 존재해야만 편안함을 느끼는 이 사회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마치 외계에서 온 돌연변이 같다.

사랑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고,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실망을 시켜도 그를 포기하지 않고 믿으며 곁을 지켜주는 것.

상황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울 때 함께 울고, 그가 웃을 때 함께 웃는 것.

상대방도 자신을 감싸주지 못할 때, 대신 나서서 그를 보듬어 주는 것.

내가 주인공인 내 인생이지만 누군가에게 주연 자리를 내어주는 것.


사랑하는 이가 상대에게 하는 것으로 일일이 계산기를 두들기면 아마 오류만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랑이라는 것이 손해만 보고 값어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설령 내 것을 바쳐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이가 어떤 이유에서 내 곁을 떠나든지 적어도 사랑함을 통해 배웠던 것은 내 마음에 깊이 남는다.

그리하여 다음에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자라게 한다.


대부분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내가 심은 사랑은 상대방이 나에게 되돌려주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지기도 한다.

사랑을 받는 당시에 상대방이 그 온전한 의미를 못 알아차린다 할지라도, 뒤늦게서야 깨닫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에게 심겨있는 사랑을 어딘가로 보내고는 한다.


깊게 사랑하는 이의 모습은 미련해 보인다.

그것도 그런 것이, 사랑을 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을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자신을 상처 받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우면서도 고귀하고, 또 그 이후에 그 사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면 그 값어치에 놀라고는 한다.


계산할 수 없고,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깊은 의미가 그 안에 녹아들어 있다.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이끌림으로 이해가 되는 것.


미련하지만 값어치 없다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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