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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Dec 13. 2020

내가 말을 해야 안다

때로는 세상이 척하면 척, 내 기분을 알아차려 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꿋꿋이 세상을 살아내는 나이지만, 때로는 지칠 대로 지쳐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나의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그냥 솔직하게 ‘나 힘들어’라고 투정을 부리면 되는데, 그러면 나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내 자존심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숨기지만 또 은근히 티 내는 웃긴 광경이 연출된다.


그랬을 때 이상한 자기 연민과 비련의 여주인공 병에 걸려,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주변인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내가 숨기려 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괜스레 몰래 (라고 쓰고 티 나게라고 읽는다) 틱틱 거리기도 하고.

주변인들은 이유 없이 은근히 뾰족한 내 언행에 어리둥절해한다.

정말 못된 마음이 이기는 때에는, 내 그런 모습에 기분 나빠하는 주변인의 모습을 보며 보상을 받은 듯 내 안에 괴물이 기뻐하고는 한다.


내가 괴로우니 너도 한번 당해봐, 라는 정말 이기적이고 옹졸한 심보다.

그렇게 은근한 괴롭힘을 즐기다 보면 사람들은 질려서 떠나고는 한다.

웃기게도 그렇게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나를 향한 네 마음이 딱 그 정도였던 거겠지’라며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굴고는 했다.


사실 그들은 내가 세운 가시에 찔려 떠나간 것인데.


한동안 나는 관계에서 이런 패턴을 유지했다.

그때 당시 우울하고 마음이 힘들던 때였다.

내 마음이 삐뚤어지니, 모든 게 삐뚤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관계는 없다.

일촌보다 가까운 무촌인 부부 사이도 대화 없이는 서로 이해불가인데, 어떻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관계가 존재할까?

심지어 배가 아파 낳은 자식 마음도 정확하게 말을 하지 않으면 부모가 놓칠 때가 있다.


말을 해야 안다.


말을 했을 때 이해 못하고 돌아서는 건 상대방의 몫이지만, 내 속에 있는 말을 전하는 건 분명 관계 속에서 나의 몫이다.

그리고 내가 말을 정확히 하지 않은 탓에 사람이 떠나가는 것도 내 책임이 더 크다.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부끄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내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이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내가 필요할 때 짜잔 하고 나타나서 내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게 필요한 말만 해주는 그런 친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 상대방이 들러리처럼 무조건 내게 맞춰줘야 할 의무도 없고.

아무리 가까워도 매일 소중함을 잊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위하고 아껴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말을 하자.

아무 말 안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해도 아무도 몰라준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알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데 내가 그 기회를 그들에게 주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향해 섭섭함을 표출할 거면, 차라리 섭섭해지기 전에 건강한 방법으로 하자.


다 큰 어른이 돼서 자기감정, 자기 생각 하나 차분하게 말하지 못하는 게 솔직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가겠노라고, 주변에 기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주변에 피해 주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그 정도로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정말 존경스럽다.

하지만 주변 사람이 제대로 표현하지 않은 내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하며 섭섭함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는 해당되는 말이다.

이런 습관이 좋은 관계를 망가뜨리고 있으니.


내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 라는 무시무시한 자기 연민에 빠지기 전 한 번만 나를 점검해 보자.

그리고 여태 주변에 없다고 생각되었던, 내 좁은 시선 때문에 놓치고 있던 소중한 관계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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