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물던 자리에 은은한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디에 머물던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저 꿋꿋이, 묵묵히 내 몫의 삶을 살아내며 나의 향기를 맡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해주고 싶다.
남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거창한 삶을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할 능력도 없고.
그저 내가 누군가를 스쳐 지나갈 때, 아니면 내가 머문 자리에 누군가 앉았을 때 내 향기를 깊이 맡으며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소박하게나마 따스한 말한마디, 예상치 못한 선물 하나 툭 건네어 울적하던 누군가를 미소짓게 해주는 정도로 시작해 봐야겠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분이시지만 내 인생에 그런 분이 한분 있다.
강한 통증으로 인해 센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면서까지도 웃으며 남을 배려하시던.
아이 다섯을 떠안고 40대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강인하시면서도 약한 이를 보면 눈물 흘리며 뒤에서 조용히 도우시던.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서 천진난만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날 때에, 나는 그분의 향기를 진하게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그분의 뒤를 따라 걸으려 다시 한번 더 다짐하며 거친 세상에 부딪히며 이기적이게 변하려는 마음을 다잡는다.
유명세, 재물, 권력.
죽고 나면, 아니, 늙어가면 서서히 사그라져 갈 것들.
그런 것에 목숨을 걸지 않고 언젠가 알 수 없는 그날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군가가 나의 향기를 진하게 맡았노라고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아득한 꿈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오늘 하루 속에서라도 찰나의 향기일지라도 그것을 풍겨봐야지.
한시 동안 은은히 퍼졌다가 공기 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지라도 그렇게 향기가 응축되고 모이면 더더욱 진해지고 언젠가 더 오래 남게 되겠지.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악취가 아니라 싱그러운 잔향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그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고, 따뜻하게 하고, 또 살아내게 하기를 감히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 내 마음속에도 향기로운 것들만 고아고이 저장하고 악취 풍기는 것들은 멀리멀리 보내버려야지.
내 입을 열어 말만 떠벌리면 내 입냄새 밖에 퍼질 일이 없으니 그저 묵묵히 걸어야겠다.
말보단 행동으로 하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고 거꾸로 가는 듯 하지만, 그래도 또다시 그분의 향기를 떠올리며 부족하게나마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 애써봐야겠다.
언젠가 내 삶이 향기롭게 되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