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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Mar 08. 2021

인생이 어딘가에 고여버린 나날들

20대 중반까지의 인생은 참 빠르게, 힘차게도 흘렀다.

콸콸 흘러넘치는 폭포수처럼 그렇게 생동감 있게 움직였고, 주말에도 제대로 쉴 시간 없이 그렇게 바쁘게도 살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인간관계도 부지런히 하고 또 봉사까지 열심히도 했다.

그때 내게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것들은 지루하고 따분한 것처럼 느껴졌고, 내 인생에 무언가 놀랍고 큰 것을 이루길 바랐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나니 어느새부터인가 인생이 어느 웅덩이에 자리 잡고 고여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일상, 더 이상 발전이 없는 것 같은 느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세계는 점점 더 또렷해지면서 동시에 좁아져 갔다.


가는 곳만 가게 되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일상적인 것이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되며 나 혼자서만 어딘가에 고여 물결 한점 없는 고요한 웅덩이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모두는 여전히 빠른 물살처럼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 하듯이 일상을 지내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지는 오래고 앞으로도 내 인생이 이대로 고여버린 채로 썩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처음에는 웅덩이를 벗어나 보기 위해, 다시 빠르게 흐르는 물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때가 있는 것인지 그 자잘한 시도들은 좌절되고 말았다.

반복적인 도전이 때로는 돌파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마저 먹히지 않아 내가 잠시 멈춰야 하는 때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인생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대신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대신 영원히 이곳에서 안주하지는 않기로 했다.

언제든 다시 흐를 수 있도록 내 안에 힘을 비축해 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쁘게만 달려온 내 인생에 반강제로 찾아온 휴식의 시간이라 믿으며 말이다.

미래를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이라 생각하기로.


그렇게 일상적이게, 반복적이게, 또 따분하게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매일에 충실하니 그 안에서 나름의 건강한 습관과 반복적인 훈련을 할 기회가 생겼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는, 누군가가 보면 참 무의미하지만 나 나름의 작은 도전과 시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바쁜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에 사색을 하기 시작했고 내 생각을 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물론 금전적인 이득도 눈에 띄는 어떠한 발전도 없지만 조금씩, 꾸준히 글 실력이 느는 것 같다.

또 글쓰기를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됨으로써 얻는 이득도 있다.

이처럼 내 안에 조금씩 건강한 습관이 잡히기 시작했다.


참으로 잔잔하지만 또 그대로 의미 있는 인생의 찰나가 쌓이고 있다.

소소하고 느릿한 걸음이지만 이것도 또 내 인생에 의미를 더하는 듯하다.


반복적인 인생에 고여버린 채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긴 하지만, 또한 하늘이 내게 허락지 않으면 흘러갈 수 없을 때도 있기에.

또 평생을 쉼 없이 달리기만 하면 지치기에 내게 허락해 주신 휴식시간이라 편안히 마음을 먹고 이 잔잔한 물결을 즐기기로 한다.

언젠가 내 물길이 트이기를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마음 편안히 먹고 오늘 하루가 주어짐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언젠가 다시 힘차게 흐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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