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Apr 03. 2021

타인을 이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나 당연하지 않다

이해심을 발휘하면 이해 못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철저히 그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고자 하면 그의 실수도, 부족함도 너그러이 안고 넘어갈 수 있다.

모두에게는 희로애락이 담긴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을 한 사람이어도, 그 사람이 어렸을 적 어느 경험 때문에 아니면 미처 배우지 못해서 그러는 거겠거니, 라며 이해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

그래, 이성적으로는 참 간단한 이야기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감정에도 함께 묶여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렇기에 타인의 이해를 받는 것을 당연시하면 안 된다.

나를 이해해주는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을 겨우 추스르고 나를 무시하기보다 어려운 길을 택하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타인의 이해심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면서 그것이 그런 행동인 줄도 아예 인지를 못하거나 아니면 인지를 하면서도 ‘나는 당연히 이해받아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 당연히 그도 사람이기에 고생도 하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겠지.

하지만 타인의 이해심을 당연히 받길 바라는 태도는 이해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이조차도 그렇게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는 그의 경계를 침범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노발대발하면서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면서도 당연히 이해받길 바라는 태도를 가진다.

타인에게 어렵게 구하지도 않으며 당연히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해를 받지 못했을 땐, 그는 마치 세상 제일가는 피해자라도 된냥 군다.


타인이 그에게 베푸는 이해심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 뒤에는 감정을 삭이고, 편의와 권리를 포기하고, 더 나아가 내 것까지 희생하는 정신도 포함됐을 수 있는데.


어떤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불편함 때문에 그것이 의도치 않게,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 타인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과거에 좀 더 고생했다는 것이 모든 이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내가 온전히 이해받지 못했을 때도 서운할 것도, 그리고 억울할 것도 없다.

내가 어렵사리 이해를 구해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해를 해줄지 말지 결정할 것은 온전히 상대의 몫이니까.

이해받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이다.

또 내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한들, 그의 이해가 당연한 게 아니니 너무 섭섭해말자.

나도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주변에 있듯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럴 수도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