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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Apr 01. 2021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은 누구나 최선, 즉 최고의 선이라고 확신하는 것을 붙들고 그대로 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게 완벽한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 최선이 누군가에게는 최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끼리 부딪히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마는 것이겠지.


예를 들면 어떤 누군가에게는 당장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무례하다 생각하며 뒤에 가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앞과 뒤에서 늘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 상대방의 최선이 그들에겐 최악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런 둘이서 의견을 굽히는 것 없이 가치관이 세게 부딪힐수록 아마 그 둘은 서로에게 꽤나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안 좋은 습관 중 하나는 주변 사람 모두를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의 말과 행동 뒤에 있는 의도를 파악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

때때로 이것은 꽤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만 가끔씩 내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무례한 언행을 한 이를 대할 때에는 참 큰 어려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주 ‘그 사람은 이해가 안 돼’라고 불평을 내뱉고는 한다.


그런데 그 과정 속 내가 늘 간과하는 것이 있다.

내가 결코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다는 것과 내 주관적인 입장에서는 완벽한 타인인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를 이해해보려 하는 시도도 결국 내 가치관과 내 편견과 그리고 내 시선을 벗어날 수는 없기에 결국 강아지가 고양이를 이해해보려 하는 격이다.

또 자신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상대방이 내 이해를 구한 적도 없다.

그저 내 입맛대로 그를 생각하고 이해하려 했을 뿐.


각 사람은 다르다.

그래서 때로는 불완전한 이해보다는 그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게 필요하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최선이 내 것과는 다를 수 있기에, 그만의 최선을 다한 그의 영역을 굳이 침범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 최악인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 멋짐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의 최선에 대해 자신 있다면 자신 있게 본인의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 내 최선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도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수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그 사람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고쳐야 할 문제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호한 가치관의 차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그 사람과 똑같이 되지 않는 이상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며 시간낭비, 감정 낭비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그 시간과 감정을 나를 위해 투자하자.


그는 그고,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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