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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May 01. 2021

누군가가 내 신경을 긁을 때

사람을 만나다 보면 때로는 나의 신경을 긁으려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을 보게 된다.

툭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나의 분노를 일으키는 그런 사람.

겹겹이 쌓인 껍데기를 풀어내고 내 안에 있는 상처를 어찌 그리 잘 건드리는지.

나 조차도 꽁꽁 숨기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연약한 모습을 잘도 이끌어낸다.


무례한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머리가 쿵쾅 거리는 정도의 분노가 차오른다.

한번, 두 번, 그리고 여러 번 참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선을 그어도 어찌나 그 선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분노가 쌓이고 똘똘 뭉쳐져서 증오가 된다.


그런데 잠시.

그 사람의 말이 아무리 무례할 지라도 그것에 분노로 반응하는 것은 나다.

그가 내게 아무리 더러운 똥을 던져댈 지라도 내가 피할 줄만 안다면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깨끗한 모습으로 그를 피해 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에게는 어떤 말이든 할 자유가 있다.

내게는 그의 입을 틀어막을 권리가 없다.

그가 뚫린 입이라고 마구 지껄여 대고 싶어 하면 내게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더 억울한 점은 아마도 그는 그가 얼마나 무례한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갉아먹는 분노의 이유를 나 스스로 찾을 수밖에.


사실 상대를 향한 분노는 나의 원하는 게 좌절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상대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을 때, 또는 내 맘을 몰라줄 때 분노가 치민다.

아마 나는 그가 나에게 조금 친절하고 배려해 주길 바랐나 보다.

그게 채워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좌절되니 나는 그를 증오했고 그저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그를 탓하며 노려보기만 했다.


결핍으로 인해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말이다.


또 생각해보면 나는 그에게 내가 느끼는 바를 솔직하고 직설적이게 표현한 적도 없다.

적나라하게 내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며 어린아이 같이 내 필요에 맞춰달라 하기에 어른으로 자라 버린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에게는 내 입맛에 맞춰 행동해야 할 필요도 없는 거다.

그는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가 아니니까.


내가 자존심을 버릴 생각이 없다면 내가 홀로 이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또 너무하다 싶으면 그의 말들이 나를 삼켜버리고 나를 아프게 하기 전에 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찾아내면 그만이다.

물론 분노가 유발되는 원인은 결국 내 안에 존재하기에 다른 곳에 간다고 해서 내가 분노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건 아니지만, 잠시라도 한숨 돌릴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그를 바꿀 수는 없으니 나를 바꿔봐야겠다.

이성적으로 이렇게 생각해도 차오르는 감정을 소화시키고 처리하는 데는 시간과 수많은 연습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 그를 만나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상쾌한 감정을 가지고 그 말을 쉽게 소화시켜내는 날 보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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