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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Jun 11. 2021

그만 불행을 자초하자

언젠가 꼭 행복하고 싶었다.

sns에서 보는 남들처럼.


그때 내 삶이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그래서 나는  행복에 목을 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 내 기준에 부합하는, 남들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행복이란 껍데기에 목을 맸다.


내 현실은 매우 초라했고, 내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더 뒤처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행복을 갈망했다.

아니,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살길 원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언가 자랑할  있는, 누군가에게 나는  정도는 살고 있다고 말할  있는 삶을 간절히 바랐다.

유치하지만 찬란해 보이는 찰나를 담은 사진 몇장을 찍을 수 있으면 정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상 속에서 그린 행복을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역설적이게도 멀어졌다.

내가 보기에 내세울만한, 그럴듯한 순간에 도취해 ‘봐봐, 나도 이만큼 괜찮아 보이는 삶을 누리고 남들만큼 하면서 살고 있어라고 자기 위안을 하자마자 나보다  누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럼 곧바로 나의 찰나의 행복은 다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감추어야만 하는 초라한 불행이 되어있었다.


내 행복이 온전한 행복이 되지 못하고 힘없이 추락해 불행으로 변해버리는 이유는 내가 남들보다 못나서 아니면 못 가져서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마치 선생님에게 숙제를 검사 맡고 좋은 점수를 받아 내야만 하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행복의 기준을 남들에게 두었기 때문이었다.

행복하고 싶다는 갈망을  깊숙이 파고들면 사실은 내 삶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행복을 느꼈어도 나는 다시 그 행복에 남들의 시선으로 점수를 매겨댔다.

내가 느낀 행복이 남들 보기에  점짜리인가가  중요했다.


웃긴건 내 행복이 남들에게 인정받았다 해도 나는 늘 결핍을 느꼈다.

세상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없기에 난 행복 속에서 늘 불행거리를 찾아냈다.


그런 나는 밑 빠진 독 같았다.

비교 속에 빠져 살면 늘 내 우위에 있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했기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가진 것이 많았고 행복할 요소가  풍요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하고 불행했다.


남들이 뭐라 한들 내가 행복하면 그만인 것인데.

남들이 뭐라 한들 내가 불행하면 불행한 것인데.


그렇게 나는 길고 긴 시간동은 수많은 반짝이는 순간들을 쓰레기로 여기며 버렸다.

그렇게 바보처럼 낭비한 행복이 참 아깝다.


 예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는데.


꼭 나는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그저 순간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진한 만족감.

소소하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그런 순간들.


가슴이 뛰고 미친 듯이 피가 끓는 사랑보다 그저 잔잔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사랑이 더 오래가는 것처럼.

지나 보니 그런 잠잠한 울림도 참 소중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이더라.


뭔가 특별한 행복을 찾기 위해 애를 쓰기보다 그저  삶에 이미 숨겨진 행복을 보물찾기 하듯 하나씩 찾아내 봐야지.

그리고  보물은 온전히 나의 것이니 남에게 평가를 부탁하기 이전에 내가 오롯이 느껴버려야지.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을 것이고 또 내가 행복하면 그만인 거니까.

그러니  행복에 점수를 매기는 특권은 내게만 부여하자.


그만 비교하고.

지금 충분히 행복 가운데 살면서 그만 불행을 자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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