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Jul 17. 2021

문제가 생겼을 때 자아성찰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곧장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는 초조한 상태로 계속 그와 관련된 기억들을 열심히 되짚어보았고, 켕기는 게 있으면 무조건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서른이 다 된 요즘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이유를 찾고 보통 그 이유는 내 환경, 주변 사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찾아내고는 한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전제가 당연히 깔려있다.


저 사람이 저래서 그래.

지금 상황이 이래서 그래.

그 이유에 나는 빠져있다.


관계의 문제는 결국 대다수가 쌍방의 문제다.

문제를 일으킨 이유에 관한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다르겠지만, 아무리 내가 100중 1만 잘못했다 할지라도 쌍방과실이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 게 아니면 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돌아보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게 맞다.


언젠가 나는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절한 때도 있었다.

그 내면 속에는 무조건 상대의 잘못을 부풀리고 있었다.

사소한 부분 하나라 할지라도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거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탓을 상대에게로 돌리며 연을 끊어버렸다.

나는 남에게는 현미경을 들이밀며 아주 작고 소소한 부분까지 잡아냈으면서 나에게는 장님처럼 굴었다.

내 약함은 약함이기에 이해받아 마땅하다 생각했고 상대의 약함은 아주 큰 죄인 양 대했다.

그 반대가 되어야, 아니, 적어도 어느 정도 균형은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상대를 향한 비판 어린 시선과 나를 향한 용납의 시선의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하고, 만약 잃어야 한다면 용납은 타인에게 더 향하는 편이 낫다.


내 주관이 녹아들어 있기에 나 스스로 하는 자아성찰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대한 균형을 찾으려 애쓰며 나 자신을 성찰하려 애쓴다면 타인의 작은 약함이야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또 큰 약함이라 할지라도 그건 비난할 게 아니라 그저 그의 약함이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삶이 꽤 괜찮아진다.


남의 약점을 확대하고 강조해봤자 내 맘에 솟아나는 건 그를 향한 미움과 멸시뿐이다.

미움과 멸시는 누군가의 마음을 갉아먹기 딱 좋은 감정이다.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내 비판의 시선을 타인을 향해 두면 둘수록 난 나 자신을 방치하고 더욱 아둔하게 만들기만 한다.

내 시선이 남에게만 고정되어 있기에 나는 방치되어 녹슬어 가게 된다.

또 인생의 교훈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다른 모든 것이 문제투성이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며, 그건 로 불평불만이 가득한 삶으로 직결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기도 할 것이다.


자아성찰을 하면 할수록 타인을 향한 용납은 커져간다.

내 연약함과 추악함을 파헤치고 직면할수록 나는 타인을 더 수용해간다.

남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기고 책임을 전가할수록 나는 점점 더 퇴물이 되어가는 걸 잊지 말자.

책임을 지고 직면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다운 삶이라는 걸 잊지 말자.


어느 상황 속에서든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질문하던 그 마음은 어린 날의 나로부터 내가 다시 배워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작가의 이전글 그만 불행을 자초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