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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Jun 06. 2021

변하는 나를 바라보는 게 꽤 마음에 든다

갈팡질팡하며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게 마음이다.

적어도 내 마음은 그렇다.


몇 년 전 어느 날 또렷한 확신을 가졌던 것이 어느 날은 반대로 뒤집혔다.


이렇게 휙휙 잘도 변하는 나를 보면서 참으로 줏대 없다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변한 내가 밉지 않다.

아니, 사실 조금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나쁘게 말하자면 나는 줏대 없어졌고, 내 기준에서 좀 불편한 걸 봐도 좀 참아 넘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좋게 말하자면 나는 조금 유연해졌고, 포용력이 좀 더 생겼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던 날 모든 구석이 밉게만 보여 원수처럼 지내던 이와 친구가 되었으며,

보기만 해도 윽, 거리며 고개를 돌렸던 음식이 맛있게만 느껴진다.

멜로라면 질색했는데, 지금은 주인공 감정에 잘도 이입해 눈물 흘리기도 한다.

가까이 지내며 반복적으로 상처 입으며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이에게 웃으며 안녕을 비는 날도 찾아왔다.


과거에 절대로 찾아오지 않으리라 여겼던 나날들이 갑자기 불쑥 찾아오더라.

그리고 그런 나날은 내가 큰 결심을 하고, 내 의지력으로 얻어낸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선물을 건네준 것처럼 그렇게 찾아왔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뻔하디 뻔한 말 믿지 않았는데, 정말 시간이 흐르니 물 흐르듯 트이는 것도 있더라.


어렸을 적 언젠가 변하는 건 나쁜 거다,라고 정의를 내린 적이 있었다.

상황이 변하며 마음이 변해 멀어지는 친구를 보며 상처를 받고서 그런 결론에 다다랐던 것 같다.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고 자부하며 친구에게 미련할 정도로 모든 걸 쏟아붓던 나라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간과한 것은, 분명 나도 변했었다.

변한 친구를 탓하고 원망할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둘 다 퇴보한 게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앞으로 나아갔기에 한 발짝 멀어졌던 것뿐이었다.


변하는 것이 변질과 의미가 비슷하다 생각해 변화가 미웠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꼭 그런 것만은 또 아닌 것 같다.

변한 내가, 그리고 변해가고 있는 내가 생각보다는 마음에 드는 걸 보니 말이다.


내가 변해오며 많은 자리에 서있어 봤기에 이해심이 넓어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실수에 가차 없는 비난을 퍼붓던 내가 지금은 그를 측은하게 여기며 그에게 힘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건 분명 내가 변한 것처럼 그도 변할 수 있다는 생각 덕분이겠지.


아직 한창 그려져 나가는 인생길 위에 서서 부족한 내가 결론 내리거나 섣불리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 조금은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게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덕분에 또 감사하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돌에 새겨진 게 아니라 또 한 번 지우고 다시 그려도 되는 연필로 그린 습작일 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어 감사하다.


그러니 지금 조금 미운 이가 있어도 이 사람이 영원히 밉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며 넘길 수 있게 됐고,

절대 이해하지 못해,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상황을 조금 여유롭게 바라볼 줄 알게 됐고,

또 나와는 극명하게 다른 취향을 가진 이를 인정해 줄줄 알게 됐다.


절대로 이해 못할 사람은 없더라.

내가 언젠가 인생에서 어떤 선택으로 인해 그와 비슷한 길에 접어들었을 때 또 이해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변한 내가, 그리고 오늘도 변해가는 내가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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