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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Sep 07. 2021

타인을 언급하려면 조심스럽게

사람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바로 타인에 대한 이야기.


시작은 간단하다.

모임에 있는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대한 지나가는듯한 말을 툭 던진다.

그저 언급하는 것뿐이다.

으레 “걔는 잘 산대?”와 비슷한 말이다.


그렇게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대한 근황이 술술 나온다.

거기서 이야기가 그치고 다른 주제로 가볍게 넘어가면 좋은데 꼭 이야기는 2절로 이어진다.


가볍고 악의 없는 말이 또 툭 던져진다.

자리에 없는 어떤 이를 향한 간단하고 주관적인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은 말거리를 기다리던 이들의 달콤한 요깃거리가 된다.

그들은 그 작은 말을 양분 삼아 말을 키워간다.


“근데 말이야”와 비슷한 말로 새로운 문장이 시작된다.

그런 말을 꺼내는 이는 자리에 없는 이를 향한 악의가 전혀 없다고 하지만 그의 우려 섞인 말에는 오묘하게 비난의 냄새가 난다.

그럼 그 희미한 냄새를 맡은 이들이 판을 키워나간다.


사람들이 돌아가며 자리에 있지도 않은 그를 향한 말을 한마디씩 던진다.

그를 ‘위해서’라는 말로 잔인한 비판들을 애정 어린 말들로 포장하며.


남의 인생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그의 치부를 들추는 건 재밌다.

누군가의 노력을 폄하해 일시적으로라도 내가 더 나은 인간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주가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일시적인 것뿐.

내 노력이 모두 의미가 있듯이 그의 노력도 마찬가지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가 내 인생의 엑스트라처럼 느껴질 뿐이라고 해도 그 누구의 인생도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게 있다.

내가 그 모임에서 빠지는 순간, 나도 그 비판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

입으로 잔인한 판결을 내리는 몇몇의 무법의 판사 앞에 세워질 수 있다는 것.

그들은 측은지심을 갖고 내 상황을 이해하며 본인의 아픔처럼 내 아픔을 여겨주지 않고 그저 안주거리로 내 치부를 들추고 더 나아가 내 아픔을 조롱할 것이라는 것.


그러니 그 무리에 휩쓸리기보다 그냥 입을 꾹 닫고 있는 게 낫고, 용기가 있다면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때 그것을 자연스레 끊어내거나 화제를 돌리는 게 어떨까.


물론 그들의 말에 연연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래도 악취가 옆에 있기 배이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또 혹시라도 그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자리에 없던 이에게까지 전달된다면, 나는 신랄한 비판을 안주 삼았던 이들과 별다른 취급을 받지 못할 테니.


그러니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타인을 향한 아주 작은 견해라도 그에게 직접 말할 것이 아니면 안 던지는 게 좋다.

그냥 남 이야기는 아예 안 할수록 좋다.


타인을 관찰하고 평가할 시간을 아껴서 차라리 나에게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자리에 모인 이들끼리 더 건강하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언급하는 것, 그것으로 비난의 씨앗을 심는 거라면 차라리 그런 씨앗은 던지지 말자.

내가 언급하는 타인이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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