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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Sep 09. 2021

오르막길을 만났을 때

인생에 가파른 오르막길을 맞닥뜨린 것 같은 때가 있다.

아직 오르는 걸 시작도 못했지만 다 오를 수 있을까 싶어서 숨이 턱 막혀오는 때.

가파른 경사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다.


당장 포기하고 싶지만 돈이든 꿈이든 아무튼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나 지름길은 없다.

올라야만 한다.


눈을 딱 감고서 첫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한 발자국씩 힘겹게 옮긴다.


숨이 차오른다.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멀리 왔다.


그래서 고지를 눈에 담는다.

내가 그곳에 오르면 얼마나 빛날지, 그 끝은 얼마나 찬란할지 상상하며 잔뜩 차오른 숨 사이로 잠시나마 미소를 짓는다.


익숙해지거나 수월해지는 건 없다.

더 힘들고 계속 배로 힘들다.

여태까지 올라오느라 쏟아낸 체력이 회복될 시간 없이 여전히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힘겹다,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당장 그만두고 싶다.

그 순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본다.

그리고 옆으로 눈을 돌린다.


그곳에는 내가 밑에서 있었으면 절대 못 봤을 광경이 펼쳐져 있다.

모든 것이 아래에 그림이 깔린 듯 펼쳐져 있고, 하늘은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금방이라도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에 닿을 것만 같다.


여태 흘려온 땀이 바람에 닿으며 이마를 시원하게 식힌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이를 악물고 참아온 고통이 조금 가신다.

그래, 난 헛된 걸음을 하는 게 아니다.


잠시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고는 걸음을 이어간다.

두 다리가 무겁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울 정도로 지쳐서야 겨우 정상에 닿았다.

올라보니 올라오는 길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광경이다.

여기까지 올랐다는 사실보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서 계속 올랐다는 게 더 중요하다.

모든 과정을, 생생한 고통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서 내가 자랑스럽다.


정상의 모습은 사실 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르막길 밑에 있는 땅과 같은 평지다.


하지만 나는 그 길 위에서 오르기 시작하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광경을 보았고 또 내가 이렇게 가파른 길을 오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몸이 가뿐하다.


시간이 흘러 또 다른, 더 가파른 길을 만난다 할지라도 나는 또 이렇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물론 그에 따르는 고통이 분명 있을걸 알아 겁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또 어찌어찌 버텨내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한 고비 넘겨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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