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Oct 19. 2021

타인의 감정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내 것이 그러하듯이

누군가가 혀를 내두를 잘못을 한 게 아닌데 누군가에게 미움을 살 때가 있다.

물론 상대에겐 어떤 부분이 그토록 깊은 미움을 드러낼만한 타당한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주눅이 들며 그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를 검열해봐도 내 잘못을 모르겠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에게 다가가 도대체 내가 왜 밉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의 미묘한 냉대를 반복적으로 받을수록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의 미움의 이유를 찾아 헤맨다.

그와 나눴던 대화, 했던 행동, 작은 것 하나하나 기억 속에서 모두 뒤적거리지만 알 수 없다.

이유 모를 그 미움이 내 마음속 힘듦보다 더 타당한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저 낮은 곳으로 추락한다.


냉정한 자기 검열 뒤에도 뚜렷이 떠오르는 잘못이나 실수가 없다면,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릴 때가 됐다.

또 그의 냉대 앞에서 내가 작아질 이유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때도 됐다.


중요한 것은 그가 대놓고 미움의 이유를 말한 게 아니라면, 아니, 설령 그가 미움의 이유를 알렸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게 타당하지 않다면 굳이 그것을 비수로 만들어 나 스스로에게 꽂으며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의 감정은 그의 몫이다.


만약 미움의 이유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뒤로 끌어당긴다면 적당히 흘려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내 어떤 언행으로 인해 상한 그의 마음에 대해 성숙한 이해의 말을 던질 줄은 알아야 한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굳이 그의 미움의 감정을 내 마음으로 끌어와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은 고이고이 접어둬도 괜찮을 것 같다.

날 미워하게 된 마음의 주인은 그고, 그 감정을 소화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니까.

애초에 그 감정을 내가 대신해 해결해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오만이다.

한낱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생각하는 오만함.


그러니 나는 내 마음에, 감정에 충실하자.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는 그의 마음의 주인이니까.

반대로 나도 내 마음의 주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감정과 생각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

또 내 마음을 가장 우선으로 돌볼 권리도 있다.


내가 정말 질타를 받아 마땅하고 눈에 띄게 고쳐야 할 점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의 감정을 적당히 그의 몫으로 돌려주자.

애초에 날 미워하는 이유가 스스로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함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타인의 얼굴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그러니 내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내 마음을 우선으로 돌봐야지, 내가 책임지거나 바꿀 수 없는 타인의 감정을 내 몫으로 만들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은 하지 말자.

지독히 안 맞는 부분이 있어 떠나간다면 그가 떠나는 대로 보내주자.

어쩌면 서로를 위해 그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가 미움 없이 행복하게 기댈 수 있는 그늘을 스스로 찾아가겠다는데, 내가 굳이 말릴 이유는 뭘까?


날 향해 쏟아내는 그의 미움은 그의 몫이고 그가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가 지독히 미워하는 내 일부분을 대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여태 잘 살아왔듯이.














작가의 이전글 작은 것을 전부라 생각하지 않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