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Nov 19. 2021

관계를 잃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질 때

최근 들어 자주 보던 친구가 갑자기 내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티 나게 거리를 두며 불편한 미소를 짓는 그의 표정에 내가 더 숨이 막혀서 평소에 하던 친근한 대화 대신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그 친구가 여태 동안 어떤 신호를 주거나 미세하게나마 티를 냈을까 싶어 열심히 기억을 뒤져보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이들과는 평소같이 지내는 걸 보니 그냥 삶이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친구의 변화에 답답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친구가 변하게 된 이유는 궁금했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만큼 그 친구와의 연이 소중하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 친구를 배려하고 싶었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로 인해 나와 거리를 두기로 어렵게 결정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더 순수하던 시절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내게 거리를 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에게 멋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사과하며 우리의 관계를 억지로라도 이어가려 애쓰지 않았다.


여전히 내 삶에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소중하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나는 관계를 위해 지나치게 헌신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과 감정은 그의 몫이다.

내게 불편한 부분을 알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다는 건, 그만큼 그도 답답했다는 뜻일 테니까.


여태 살아오며 관계 속에서 수많은 상처와 아픔이 흉터를 남기고 지나갔다.

분명 아픔은 무뎌졌다.


어렸을 적 같은 일을 겪었다면 나는 어느 연인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그에게 무작정 사과하고 억지로라도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더 과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고.


그의 차가운 행동 하나에, 단어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고 위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씁쓸하고는 그렇게 지나간다.


담담한 마음에 놀라고 단단해진 나에 놀라지만 동시에 냉정하고 아쉬움을 깊게 느끼지 않는 내게도 놀랐다.

그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며 가벼운 바람이 분 듯 그렇게 이 일을 놓아준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무뎌지며 언젠가 내가 원했던, 어떤 일에도 크게 요동하지 않는 어른의 모습이 되어가나 보다.

이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작가의 이전글 가장 먼저 나에게 전달되는 나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