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이제 겨우 한 달 남았다.
어렸을 적 김광석 님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막연하게 서른이 된 내 모습과 마음가짐을 상상하고는 했었다.
그 시절 상상했던 내 서른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 많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가장 푸르고 빛난다는 나의 20대는 조금 허무하게 흘러가 버렸다.
20대 초반에는 반짝반짝했던 내가 기억이 나지만 20대 중반부터는 서서히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지금은 어딘지 모를 정도로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
20대 초반에 반짝일 수 있었던 이유는 설렘 때문이었다.
드디어 학교라는 곳에서 벗어나 직장에 들어서며 내가 어디까지 성장하고 어떤 멋진 사람이 될까라는 기대감.
나만 유일한 주인공인 양 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며 분명 멋있는 어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자신감이 넘쳤었다.
내게 한계란 없을 줄 알았다.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어쩌면 나는 평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 큰 걸 잃어버린 것처럼 내 마음속에는 공허함과 상실감이 자리했다.
그냥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서 흔히 보던 그저 그런 삶을 살게 되겠다는 생각에 이상한 절망감이 일어났다.
평범함이 가장 큰 축복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20대 후반, 퇴사 후 나는 방황했다.
늦었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그저 허송세월만 보냈다.
어쩌면 나는 실패자이며 패배자 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날 앞서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뒤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수록 나는 위축됐고, 자신감을 잃어 도전의식을 버렸다.
20대의 끝자락에 서보니, 이제야 내가 고민했던 것 중 그 무엇도 늦지 않았었다는 진한 후회를 느끼며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20대는 뒤돌아보면 오만함이 꺾이는 과정이었다.
70억 인구 중 나라는 사람은 단 하나고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아직 유효하나, 동시에 주변 모두도 그렇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전에는 나 혼자만 선택받은 사람인 양 굴었는데, 사실 모두가 그런 존재라는 걸 깨달으며 나 혼자만 빛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빛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밤하늘에 여러 별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예쁘게 빛나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내가 성숙했을까, 는 의문이다.
세상을, 현실을 깨달아 꿈의 크기가 현저히 줄어든 게 성숙이란 의미와 맞닿는지는 글쎄.
순수함을 잃고 때가 묻은 마음으로 듣기보단 말하는 걸 좋아하게 된 게 어른은 아닌 거 같은데.
엉덩이랑 머리만 무거워져서 몸부터 튀어나가기 보단 말로만 하는 사람이 된 것도.
나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단 주변 환경을 향한 불평을 더 쏟아놓는 것도.
내가 언젠가 미운 어른이라 생각했던 모습이 내 안에 조금 자라난 것 같기도 하다.
30대의 시작점에 다다라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왜 나는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늦었다고만 생각했었을까.
20대가 저물어간다는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왜 나는 또다시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묵묵히 포기만 했을까.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내 삶을 점검하고는 했으나 이제는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점검할 때이다.
나만의 기준으로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 어떤 인생도 같지 않기에 다른 누구와는 비교할 수 없고, 비교를 통해 우월감이나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건 이제 소용없다.
이제는 스스로를 신뢰하고 의심하며 단단해지고 또 변해가야만 한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았던 20대 후반이었지만, 또 내가 겪었던 상실과 성취가 양분이 되어 30대를 더 꽃피게 만들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