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Dec 16. 2021

오랜 시간을 두고 심으려 한다

당장 내일을 위해서가 아닌, 몇 년 후를 위해

언젠가 날 향해 가혹한 채찍질을 해댔던 적, 빨리빨리 변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내가 너무 답답하고 미웠던 적이 있었다.

빨리 이 수렁 같은 곳에서 빠져나가 예전과 같이 상쾌한 매일을 즐겁게 살아내고 싶은데, 너무 오랜 시간 고착화된 내가 변할 줄 모르는 것 같아서였다.

 

온갖 부정적 습관을 안고서 평생을 살아가고 싶지 않아 다급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발버둥 쳤다.

변화가 너무 간절하고 마음이 급하니, 결국 나는 변하지 않는 내게 실망하고 평생을 변하지 못하고 살 것 같아 절망했다.


이런 반복된 절망으로 인해 나는 그저 주저앉기를 선택하기도 했었다.

‘자기 수용’이라는 번드르르한 말에 지독한 자기 합리화를 더해서 내 삶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나쁜 습관들을 마주하지 않고 외면하기만 했었다.

나는 관계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나를 위해 노력해주지 않고 나를 수용해주지 않는 이들을 향해 모든 화살을 돌렸다.

결국 또 이것도 아니다, 싶었다.


정작 내게 필요한 건 모든 걸 견디며 내 곁을 지켜줄 사람도, 당장의 큰 변화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농부는 농사를 지을 때 당장 내일 열매를 볼 생각을 하며 씨앗을 심지 않는다.

가을에, 아님 먼 훗날 이 씨앗이 싹을 틔우고, 오롯이 자라 나무가 돼 열매를 맺는 그날을 바라보며 심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 열매를 본다.

 시간까지 농부는 새벽부터 일어나 땀을 흘리며 밭을 돌본다.

당장 눈앞에 큰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농부는 그렇게 묵묵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한다.


마찬가지다.


인생에는 심는 기간이 필요하다.

나의 시간, 노력, 열정을 쏟아 열매를 기대하는 기간이.

열매를 거두는 때가 며칠, 몇 달, 그리고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묵묵히 심고 심은 것을 돌보는 기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리고  스스로가 변화를   없어도 말이다.


지금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도 1년 후, 5년 후, 그리고 더 길면 10년 후의 내 모습을 바라며 천천히 일궈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당장 아무 변화가 없다 해서 그냥 포기하고 그대로 산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그대로의 인간이 되거나 아니면 더 뒤로 물러나겠지.

그러니 낙담하지 말고 멀리 보며 심고 일궈나가자.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나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천천히 지켜보기로 하자.

씨앗을 어제 심었는데 왜 오늘 열매가 안 보이냐는 미련한 소리를 멈추고.

중요한 건 어느 방향으로 내가 자라나고 있는 건가이니까.


그러니 실망과 절망 그리고 낙담을 멈추고 10년 후를 기대하며 지금 최선을 다하자.

그 과정 중 완벽하게 변하지 못한 내 모습이 있다 하여도 괜찮다.

그 과정 중 풍파를 만난다 해도 괜찮다.

어떤 방향으로 자라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가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있기만 하면 언젠가는 실한 열매를 보게 될 테니까.


그러니 당장 오늘부터 무언가 실천하기를 시작했는데 내가 다른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해서 절망하며 포기하지 말자.

어떤 습관을 바로잡기 위해선 그것을 또 다른 습관으로 덮어야 하니까.

좋은 습관을 새로이 만들어 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채찍질과 실망을 멈추자.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내가 따라주지 못한다고 해서, 자그마한 실패가 있었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나는 안 될 사람이라고 낙인찍지 말자.

내가 실패자인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에 도전을 시작한 나 자신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주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자라서 열매를 맺겠지.


그래서 이제부터는 오랜 시간을 두며 모든 걸 심으려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나쁜 습관들을 인내를 갖고 하나씩 뿌리 뽑아보려 한다.

그리고 훗날 그 위에 예쁘고 향기 나는 꽃과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나무를 심어보려 한다.

가장 먼저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기분 좋은 향기와 맛있는 열매를 맛보게 해 주기 위해, 그리고 그 뒤엔 내 곁에 사람들이 쉬며 머무를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서른 즈음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