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Feb 01. 2022

‘잘못’이 아니다

관계에 조그마한 금이 가거나 상대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만 하면 난 항상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속으로 묻고는 했다.

건강한 자기 검열을 위한 물음이 아니라 자책을 위한 물음이었다.

그 질문 이면에는 무조건 내가 잘못했겠다, 라는 마음도 깔려있었다.


이게 잘못된 물음이라는 건 남편 덕분에 깨닫게 됐다.


“왜 너는 항상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들어보니 그건 상대 잘못이었는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더니 무심하게 툭 던지는 그 말에 나는 조금 울컥했었다.

유일하게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 사이에서 나는 조금 특이하고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난 늘 내가 이상한 줄만 알았었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무던하고 쿨해서 관계에 능숙한 엄마는 늘 내가 문제라 여기는 것을 털어놓으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말을 했었다.

가끔은 인생을 살며 얻은 피로감에 내 고민이 짐처럼 느껴진다는 듯, 흘려들으며 한숨을 쉬기도 했었다.

엄마를 닮은 다른 형제들은 그거에 동조를 했었다.


그 누구도 대놓고 나를 미워하거나 나를 비아냥 거린 건 아니었지만, 늘 그렇게 나는 짙은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내가 이상한 거라고, 내가 과하게 예민하고 멘탈이 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이야기로 꺼내기보다는 그냥 삼키며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고는 했었다.


내게 관계 속 문제는 늘 지독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문제가 아닌 것을 크게 부풀린다고 생각했고, 내 멘탈이 약해서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걸 힘들어한다고 생각했고, 또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변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걸 기피했었다.

모든 걸 털어놓으면 그들도 날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고 믿었으니까.


자책이 습관이 되다 보니, 상대가 선을 넘거나 무례하게 굴어도 나는 그게 상대의 잘못인지도 모르고, 또 그를 탓할 줄도 모르고 그냥 자연스레 나를 미워하게 됐다.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남편이 덤덤한 말투로 내 편을 들어줬을 때의 해방감은 글로 옮길 수 없다.

남편을 만나기까지 관계 문제에 대한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나도 짓누르고 외면하던 내 감정이 타당하다니.

그날 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가족을 탓하진 않는다.

그저 다른 성향에서 피어난 그런 문제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엄마는, 다른 가족들은 다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이겨내곤 했고 또 그들도 그들만의 삶의 무게가 있었으니까.

또 뒤늦게 나 이러이러해서 힘들었다, 나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라고 했었을 때 묵묵히 날 배려해주던 그들을 알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에겐 안 맞는 옷인 그들의 해결방법을 억지로 입으려 하고, 다른 옷을 찾으려 생각도 하지 않고 내 몸을 탓했던 내가 조금 안타깝다.

그래서 가족 중 아무도 앓지 않은 우울증을 지독하게 5년을 앓았고,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한다는 망상 속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혹시라도 관계의 문제를 보며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으면 이 글을 통해 꽉 안아주고 싶다.

모든 게 당신 탓은 아니라고.

그냥 그렇게 되는 관계가 있고 당신 주변에 안 맞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라고.

세상이 주류라고 하는 모습으로 억지로 당신을 바꾸려 하다 더 깊은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냥 차근차근 당신이 준비됐을 때 바뀌면 된다고.

늘 당신의 감정은 타당하다고 말하고 싶다.


잘못이 아니다. 그저 안 맞았을 뿐이지.

그리고 당신이 불쾌했다면 당신을 불쾌하게 만든 이의 행동도 있는 것이다.

꼭 당신이 지나치게 예민한 탓만이 아니다.


먼저 스스로를 듬뿍 위로를 하고 난 후 다음엔 어떻게 달라질까 고민해도 늦지 않다.

감정이 다친 채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고민해봤자 끝은 절망과 자기혐오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게 쌓이고 쌓여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울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지 말고, 그전에 당신부터 돌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은 이기적이게 살며 상대 탓을 해도 괜찮다고.


내 남편이 내게 그러했듯이, 나도 당신에게 이 말을 던지고 싶다.

예민한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당신 입장에서 무례한  사람의 무심함 탓일수도 있다고.

그러니 조금만 울고 털어버리라고.

이걸 평생 안고 가지는 말라고.

그렇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우울함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계속 아프고 서글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