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적은 글들을 훑다가 다짐처럼 적어놓은 이 문장을 발견했다.
타인에게 날 좋아할 의무는 없으나 싫어할 권리는 있다고.
한참 전에 적은 글이지만, 오늘 내게 꼭 필요했던 말이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적은 글이 차갑고 무례하다 느껴진 누군가를 마주했던 오늘 소박한 위로가 된다.
그가 차갑고 무례했던 것보다 내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문장이다.
그에게는 날 싫어할 권리가 있으나 그에게 날 좋아할 의무는 없다고.
물론 그가 날 싫어하는지, 귀찮아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오늘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들었든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춰야 할 때다.
그리고 그가 한 사람으로서 가진 타당한 권리를 인정하고 그에게 억지로 나를 좋아해야만 하는 의무를 씌우고 싶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의 마음이 한 방향으로 정해졌으면 내가 뭐 어쩔 수 있을까.
쉬이 바뀌지 않는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또 종이 뒤집듯 바뀌는 것도 사람 마음이니까.
지나치게 낙천적인 희망은 버리되 그 가능성은 열어둬야지.
아, 또 한 가지.
그에게 의무가 없고 권리가 있듯이, 그가 나를 뭐라 판단하든 나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자명하다.
내게도 이 관계를 주도적이게 만들어갈 권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쌓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또 그 어려운 걸 한번 이뤄놓으면 잘 흔들리지 않는다.
그 평가가 혹독하면 혹독할수록 마음에서 떨쳐내는 게 어렵지만, 한번 툭툭 털어내고 나면 또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지금 할 것은 그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나의 자존감을 타의에 의해서 쌓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며 쌓아가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권리가 있듯이 내게도 똑같은 무게의 권리가 주어져 있는 것도 잊지 말자.
그의 손에 관계를 단번에 끊을 수 있는 칼자루가 있다면 동일한 칼이 내 손에도 있는 것이다.
절대로 칼자루가 한쪽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손에 쥐어진 건 같다.
그걸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까 칼자루가 상대에게만 있는 양 비굴하게 굴지 말고 조금만 더 당당해보자.
다 자라서 성숙한 어른 흉내라도 내보자.
나는 생각보다 쿨하지 못한 사람이라 맺고 끊음을 잘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번이라도 그냥 덤덤한 척해보자.
모든 관계가 소중한 건 사실이지만 또 관계란 게 억지로 이어 붙인다고 해서 붙여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보내줘야 할 관계는 잔잔히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듯, 그렇게 보내줄 줄도 알아야지.
놓치고 싶지 않아서 손에 꽉 쥘 줄도 알면 힘을 풀고 놓을 줄도 알아야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가 너무너무 좋고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은 그의 마음이 조금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이 그에게 부담이라면 그걸 줄일줄도 알아야겠지.
속이 여전히 좀 쓰라리긴 하지만 이것도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덤덤해지겠지.
그러니 오늘은 더 나은 관계를 만들 날을 위해 연습한 셈 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