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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Apr 11. 2022

큰 폭풍 뒤의 잔잔함

꽤 담담한 어른이 되었다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큰 상처를 받아 펑펑 울게 된 일이 있었다.

마음이 있는 그대로 갈기갈기 찢기는 마음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무너져 내려 꺽꺽 소리를 내어 울었다.


여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나 보다.

이토록 무너져 내릴 공간이 더 밑에 또 숨겨져 있었던 걸 보니 말이다.


그날 도저히 짧은 시간 내에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에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문제의 원인이나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결론을 모두 내리고 잠에 들었을 텐데.

그렇게 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지치기도 했었고, 이성보다 내가 그 순간 받았던 상처가 컸기에 나는 그냥 생각을 멈추었다.


아팠다.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서 실제로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통스러웠고 나는 한없이 나를 자책하면서도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날 밤, 내게 상처 준 이에게 고스란히 퍼붓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감정의 손을 들기보다는 그저 회피를 택하고 잠에 들었다.

상처가 너무나도 커서 내가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그 순간 이성적으로 소화해 내기엔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회피했기에 다음날도 그렇게 아플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잠을 푹 자고 일어나자 마음이 잔잔했다.

이상한 평정심이 찾아왔다.


맥락 없이 요동치던 감정의 폭이 한층 좁아진 느낌.

좋은 기분도, 나쁜 기분도 들지 않는 그런 평온한 감정이 하루 종일 지속됐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감정에 지친 마음이 휴식시간이라도 취한 듯, 잔물결 같은 감정만 일었다.


그렇게 되니 오히려 상처받게 된 상황 가운데서 냉철하게 내 행동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다음엔 나를 더 잘 지키게 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까 고민하며.

그리고 상처 받은 이유를 모두 상대에게 전가시키지 않게 되어 좋았다.


이성적인 사람들을 보면 신기해하면서도 동시에 동경했었다.

그들은 어떻게 저렇게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며 생각의 흐름을 스스로가 잡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라며.

매 순간 거친 감정의 파도에 요동하는 나와는 다른 그들을 닮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이거구나, 싶었다.

그들도 어쩌면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지나 그것에 요동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게 아닐까.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에도 수많은 흉터가 남아 그들의 감정을 잔잔하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타고났기에 그렇게 쉬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감정의 폭풍 가운데서 지키는 법을 배웠을 뿐.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에 고삐를 씌우는 법을 배웠을 뿐.

그들도 애초부터 단단한 사람으로 태어나 모든 게 쉬웠다는 게 아니었다는 것.


휘몰아치는 긍정적인 감정이 더는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만큼 격렬한 부정적인 감정도 사라졌다는 게 감사하다.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명언을 들을 때 코웃음을 치는 편이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그 말에 동조할 수 있게 됐다.


큰 상처를 받고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마음으로 돌아가 보았기에, 그다음에 받는 큰 상처에도 덜 요동한다는 것.

더 나아가 그게 반복되다 보면 애초에 상처받는 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


다음에 겪을 폭풍우가 두렵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던 큰 폭풍우가 찾아온 후 경험한 잔잔한 감정의 상태도 퍽 좋다.

언젠가는 다가올 상처들 속에서 더 발전해 나갈 나를 발견하며, 더는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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