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무뚝뚝한 성격인 편이라 ‘위로는 무슨 위로, 내가 잘 이겨내야지’라고 생각하고 힘듦을 툭툭 털어버리려 노력했었는데, 언젠가 마주친 위로글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때 나도 모르고 있었던 중심부를 푹 찌르는 감동의 말에 나는 녹아버리고 말았다.
내 존재만으로도 내가 소중하다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그 말이 큰 위로가 되더라.
그 후부터 나는 마음이 지칠 때면 온라인 상에서 적당한 따스한 위로의 말을 찾아 헤매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게 몇 년 동안 습관으로 굳어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위로 중독에 걸려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새부터인가 내가 위로의 말을 듣는 게 당연하다 생각이 됐고, 주변 사람들도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듣고 싶은 위로를 던질 줄 모르는 사람이면 내 삶에서 간단히 제해버리면 그만이라며.
나는 더 따스하고, 더 예쁘고, 더 자극적인 위로의 말을 찾아 헤맸다.
여느 중독 환자들에게 내성이 생기듯, 내 마음에도 내성이 생기더라.
흔한 위로의 말은 어느 새부터 따분하게 생각했다.
내가 받아왔던 정도의 위로는 당연한 것이고 나는 더 강한 위로를 원했다.
지인의 담담한 위로의 말에 ‘또 뻔한 말 하네’라며 냉소적인 생각까지 하는 나 자신을 언젠가 발견했을 땐 아차, 싶었다.
뭔가 잘못되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건네는 위로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닌데, 나는 그것을 당연시하며 더 나아가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 말을 비판하기까지 이르렀다.
내가 인생을 홀로 견디며 이 악물고 버텨나갈 땐 내 표정 하나 알아주는 사람만 있어도 큰 따스함을 느끼고는 했었는데.
그 당시의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위로를 해주지 않는 사람이면 섭섭함까지 느끼고서 상대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게 아니라, 마치 다른 이들로부터 받는 위로가 내 지지대가 되느냐 굴었다.
깊은 마음속에는 내가 당연히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당연히 우쭈쭈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의 삶에서는 주인공임을, 나만큼 아니면 나보다 더한 삶의 무게를 버티고 선 그가 건네는 위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그리고 그의 위로가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나는 어느샌가 잊었던 것이다.
나의 삶의 무게를 버텨내는 건 당연한 것임을, 주변 이들이 내 마음을 헤아려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위로 중독에 갇혀 너무나도 쉽게 잊었다.
감사해야 할 것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되려 불평만 늘어놓으면 불행해지는 건 결국 나라는 걸 생각지 못했다.
사람과 위로에 목을 매면 결국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결핍과 갈증에 죽어가는 건 나라는 것도.
그 누구도 나 대신 나를 지탱해주며 내 삶을 책임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깨달았다 해서 한순간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위로의 말을 찾아 헤매는 나를 억누른다.
온라인상에서 하루에 몇 개씩 보곤 했던 글들도 일부러 보지 않는다.
위로보다는 인생에서 오는 고달픔과 힘듦을 조금 더 당연시하려 한다.
날 좀 더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하여.
위로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