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깔보고 내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삶은 더 불행해진다.
난 표면적으로는 겸손한 척했지만 아주 깊은 내면을 파헤치면 그 속에 우월감과 자만감이 똘똘 뭉쳐있었다.
내가 모든 걸 아는 것처럼, 내 생각이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니 난 늘 방어적이었다.
‘그건 오해야’,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아니 내 뜻은 그게 아니고’라는 말들을 참 많이도 썼던 것 같다.
이 시기에는 누군가 내게 비판의 말을 하거나 조금만 내 의견에 반문을 던져도 못 견뎌했었다.
그것을 쳐낼 만큼 자존감이 건강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은연중에 마음속에서 깔보던 그 사람에게 지적을 당했다는 사실에 더 분개했던 것 같다.
나는 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데 상황이 도와주지 않아서 못했으니까, 라는 이상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찮고 추악한 질투의 얼굴을 감추려고 걱정하는 척 가면을 썼다.
걱정하는 말을 한마디 던질 때 그 이면에는 그 사람이 나보다 모르고 경험이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을 깔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할수록 나는 더욱더 자기혐오에 잠겼다.
사실 내가 깔보는 그 사람들보다 못한 내 모습과 상황에 환멸이 났고, 난 그 누구보다 나를 참 많이도 미워했다.
또 질투 속에 타인들을 더더욱 미워했고.
미움의 악순환이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미워하는 걸로 모자라 나는 내 삶, 내 환경, 그리고 이 세상을 다 미워했다.
몇 년간 그렇게 우울 속에 살다 보니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모든 걸 미워하며 살고 있나,라고.
그런 깨달음이 생기자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일단 주변 사람들을 덜 미워해보기로 했다.
일단 그들이 나보다 낫고,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을 거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니 정말로 각각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보였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한심하게 보던 사람들로부터 하나둘씩 좋은 점을 발견했다.
맘속에 미움이 가득했을 땐 나를 아무리 사랑하려고 발버둥 치고 덜 우울하려고 발악을 해도 안 되던 게 자연스럽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이 상황이 지금 내게 허락된 최선의 상황이다라고 믿으니 미움이 한결 또 덜어졌다.
비굴함으로 타인을 높인 게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치켜세워주니 자연스레 내 마음이 우울 속에서 멀어졌다.
또 타인이 어떤 조언을 하면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알게 됐다.
물론 아직도 가끔씩은 방어적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지만, 그래도 이성을 되찾고 그 말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는 법도 배웠다.
타인을 깔볼수록 결국 불행해지는 건 나다.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내 곁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감사하며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깊은 우울감과 자기혐오의 늪에서 벗어났다.
기억하자.
언젠가 먼 훗날 내가 다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우울에 늪에 빠져들 때 다시 기억하자.
내가 남들을 너무 깔보고 이 상황에 감사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