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누군가의 추악함을 마주했다.
나르시시스트라고 속으로만 의심하던 사람이 자기가 궁지에 몰리자, 본인의 아들마저 거세게 공격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착한 사람인 척 가면을 쓴 채로 살아오던 그 사람은, 본인이 아들을 더 이상 맘대로 주무를 수 없다고 깨달은 순간부터 자기 안에 있던 모든 추악함을 날것 그대로 쏟아내고 말았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혀대고 교묘한 정치질로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런 그 사람을 보며 통쾌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씁쓸했다.
그 사람이 결국 벼랑 끝에서 스스로 드러낸 자신의 추악함 보다는 그 날것의 표현에 상처를 받아버린 아들을 봐야 해서 그랬을까.
그 사람이 그렇게 사랑하고 희생을 불사했다던 아들을 제 손으로 공격해 상처 입히는, 그런 야만적이게 느껴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어서일까.
그 사람의 추악함이 쏟아져 나와 피해를 보게 될, 깨어지게 될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에 그랬을까.
여러 이유로 인해 그 사람의 자멸이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그 사람의 그림자 한 자락이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다.
나도 한 점의 실수 없는, 청렴결백한 하얀색의 사람이 아니라 회색 같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나도 그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차마 드러내지 못한 추악함이 내 속에 존재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게 나를 괴롭히던 그 사람의 추악함이 만연하게 드러난 걸 즐겁게만 느낄 수 없던 이유겠지.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남들 모르게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추악함을 건강한 방식으로 잘 정리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누군가의 앞에서 드러낼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주면서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