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우울이나 불안, 그런 류의 감정들이 나를 확 덮칠 때가 있다.
보통 저런 감정들은 잔잔한 파도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있는 듯한데, 때때로 내가 피곤하다거나 아니면 유달리 힘든 날에는 고삐가 풀려, 서서히 나를 적시기 시작한다.
파도가 조금씩 거세져 발끝부터 적시듯, 그렇게 가만히 있다 보면 어느새 그 감정에 머리끝까지 잠겨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그런 감정에 잠식되고 나면, 평범했던 일상들에 녹아 있던 사건들이 유독 부정적이고 암울하게 비치고는 한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그냥 무표정하게 있었을 뿐인데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는 느낌 같은 것.
인생에서 긴 시간 이런 감정의 파도와 싸워오면서 느낀 건, 이러한 감정들은 잔잔할 때 비교적 컨트롤하기 쉽다는 것.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에 살짝 젖어들어갈 때를 잘 알아서 그것에 맞추어 뒷걸음질 치는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젖어들지 않기 위해서.
이유 없이 피어오르는 감정에 굳이 이름이나 이유를 붙이지 말자는 이야기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어찌 됐건, 내 인생 속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는 이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이 조금씩 격해질 때마다 굳이 그것에 이유나 이름을 붙여버리면, 그것이 실제가 되어 더 강해지고는 하기 때문이다.
아아, 내 삶 속에 늘 녹아들어 있는 우울이 또 내게 찾아왔구나.
내 마음속에 늘 함께하는 불안이 고삐가 풀려 날뛰는 걸 보니, 오늘따라 내 마음의 힘이 좀 약해졌구나.
이 정도의 생각만 하고서 멈추자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서 나를 좀 더 살뜰하게 대해주고 나면, 그 감정들은 내 안에 자리 잡지도 못한 채, 한낱 지나가는 감정이 되어버린다.
이걸 몰라서 이런 사소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우울이 우울을 낳아, 그 감정에 잠겨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것을 파고들어 우울에 좀 먹혀 산 적도 많았다.
그러니, 잔잔하게 연주되는 배경음악처럼 내 인생에 늘 깔려있는 우울이나 불안을 굳이 내 주제곡인 것처럼 껴안지는 말자.
그게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전부인 것처럼 굴지도 말자.
이런 지나갈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속지 말자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