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무가치하다 여기는 너에게

by 랑끗

오랫동안 연을 이어오고 연락을 해오던 친구가 있다.

오랜 기간만큼 고마움이 참 많이 쌓였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어려움이 쌓인 친구다.


서로의 불건강한 시절과 행복한 시절을 함께 지내고 견뎌오며 많은 추억도 있으면서도 많은 괴로움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가는 길이 자꾸만 멀도록 나뉘어서일까.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린 듯, 세모와 동그라미를 한 곳에. 끼워 맞추려는 듯이 아등바등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 둘 모두 우리가 서로 너무 달라져버렸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쭙잖은 고마운 기억 때문에 가식적인 관계만 이어나가고 있을 뿐.


친구는 시간이 흘러오는 동안 점점 기본적인 예의를 ‘나에게만’ 안 갖추기 시작하더라.

자기 이야기는 실컷 하다가 자기 입맛에 조금이라도 빗나가는 말을 하면 못 들은척하거나 대놓고 말머리를 돌려버린다던지.

자기 뜻대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덜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비웃는다던지.

좋은 이야기나 좋은 일은 다른 이들과, 나쁜 이야기와 나쁜 일은 나와만 한다던지.

자기 의견에 수긍해주지 않으면 모자란 취급 한다던지.

돌려서 비아냥 거리고는, 그걸 알아차려서 물으면 전혀 아니었다고 발뺌한다던지.

뒤에서는 욕을 하고서 앞에서는 가식적으로 군다던지.

그런데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안 나오더라고.


어쩌면 인생의 저점을 찍어버린 친구이기에, 삶이 너무 힘든가 봐,라는 합리화로 참아온 것도 몇 년.

쌓이다 못해 대놓고 말도 해보고, 말해도 안 되어서 나에게 하듯이 그대로 해주면 그 친구가 ‘네가 감히?’ 같은 태도로 일관하기를 일 년이 넘었다.

이제는 지쳐버린 탓에 나는 거리를 두기로 결심을 했다.

대놓고 관계를 망가뜨리면, 화려한 언변과 타고난 정치 스킬로 분명 엮여있는 지인 모두에게 정치질을 하며 나를 먹여버릴 걸 알기에 나는 그냥 서서히 발을 빼기로 결심했다.

눈치가 빠른 친구이기에, 아주 초기에 달라진 나를 보고서 갑자기 저자세로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나를 위함이 아닌, 친구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겨우 며칠짜리일 걸 알기에, 나는 혹하지 않고서 멀어지기로 선택했다.


그 친구는 복수심에 내 약점을 쥐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러 댈 걸 알지만, 앞으로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멀어지고 보니 그 친구가 뭔 말을 하던 별로 상관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그 친구는 이제 내 인생에서 아웃이기 때문에.


그리고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독약 같은 관계 속에서 괴로워했는지를 깨달았다.

매일마다 이어지던 친구와의 연락과 간간이 이어지던 만남 속에서의 친구의 반응은, 지속적으로 내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던 것이었다.


대놓고 내 말을 무시하거나 내 말을 끊고 자기 얘기만 하던 친구로부터 나는 내가 재미없고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느꼈다.

자기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날 덜떨어진 사람처럼 비웃던 친구로부터 나는 내가 멍청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뒤에서 욕하고 날 앞에서 가식적으로 대하는 걸 알게 됐을 땐, 나는 마치 가시밭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음을 걷는 것처럼 느껴왔다.

가끔씩 보여주는 긍정적인 친구의 반응에, 나는 언제 내가 다시 그 친구를 실망시킬까, 전전긍긍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내 삶의 바운더리 밖으로 밀어내보니, 느껴졌다.

오랜 친구라는 이름으로 나는 내게 독약과 같은 관계를 끌고 왔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나는 늘 존중받고 있었다. 친구가 느끼던만큼 내게 그 정도의 큰 문제는 없던 모양이다.


늘 일방적으로 눈치를 봐야 하고 맞춰줘야 하고, 내 의견을 내면 비웃음이나 당하던 그 관계 속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잃어 왔는지.


내가 관계에서 한발 빼던 순간까지도 친구는 너 그렇게 살다가는 외톨이 된다며, 너는 MBTI 검사를 하면 99.5프로는 내향적이게 나올 거라며 비아냥댔다.

그래, 설령 외톨이가 되고 내가 99.5프로의 내향인이라 할지언정, 너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아니꼬왔을까?


자기 비위를 맞춰주던 사람 하나를 잃는다는 생각?

자기가 맘 놓고 막대할 수 있는 감정 쓰레기통을 잃는다는 생각?

그쯤이었으려나.


내 불행 속에서 네 행복을 티 하나 없이 축하해 주던 과거의 내가 이제는 사라지고, 잘 살고 있는 내가 네 불행 속에 끌어들여지지 않는다는 게 너는 그렇게 힘들었을까.

어떤 질문을 하든, 결국 나를 찌르는 아픔이 되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묻는 걸 멈췄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관계가 나에게 독이라는 걸.

하지만 내가 몇 년간, 다른 사람이었으면 단 몇 번도 참지 않았을 하대를 참아왔던 이유는 과거에 너로부터 받았던 고마운 마음들 때문이었을 거다.


그토록 내 약점을 빌미로 나를 밑에 두고 쥐고 흔들려는 네게,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려고.

설령 네가 그토록 잘하는 정치질을 해서 내 주변 사람들이 떠나간다 한들, 어쩌겠어. 내가 책임져야지.

분별력 없이 네게 내 약점을 털어놓은 내가 잘못한 거지.


고맙다, 덕분에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더 조심스럽게 대할 수 있을 거야.

네가 내게 파놓은 상처만큼.

잘 살아, 그래야 너는 나라는 사람을 덜 저주하겠지.

어쩌면 내가 영영 내 불행 속에서 살았고, 네가 네 행복 속에서 살았더라면 지금의 우리 관계는 달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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