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테스트기는 차갑게 1줄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하고 난임 병원에 찾아갈 때만 해도 난임 병원을 다니며 타인의 임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안 생기면 안 낳지 뭐. 너무나 가벼운 마음이었고, 어쩌면 먼훗날에는 아이가 없는 게 '오히려 잘된' 일이 될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생리가 시작하고 이틀째에 병원을 방문했었고, 배란유도제를 5일간 2알씩 먹었다. 배란유도제를 다 먹고 배란일에 맞추어 병원에 방문해서 초음파를 보았다. 의사는 난포 2개가 자랐고, 그 중 1개는 꽤 크다며 난포 주사를 맞으면 36시간 이내에 배란이 될 거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임신 확률이 높은 날짜를 지정해 주었고 우리는 성실하게 숙제를 잘 해내었다. 일주일에 세 번이나 힘을 쓸 남편을 위해 장어도 먹고 소고기도 먹으며 즐겁게 한 텀을 지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술 한잔을 못 마시고 커피도 최대한 줄이고 있어 브레인 포그처럼 하루하루가 멍하다는 것 정도였다. 일주일에 2~3일 요가를 하며 몸이 건강해진 느낌도 들고 좋았다, 생산적인 일주일을 살아내는 것 같아서.
"오빠, 아이가 딸이면 좋겠어 아들이면 좋겠어?"
"회사 휴직 제도는 어떻게 돼? 혹시 나 임신이 되면 내년에도 비담임을 해야 될까?"
"6+6 제도란 게 생겼다던데 뭔지 알아?"
남편과 자꾸만 임신 후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정이 된 게 아무것도 없는 데도 내년을 계획하고 있었다. 당장 임신이 되면 해외 여행을 못가게 될텐데, 마지막으로 어디라도 다녀왔어야 하나 그런 부질없는 아쉬움의 말도 했다. 배란 8일째까지는 마냥 즐거웠다. 배가 아프고 열이 올랐다. 남편에게 몸이 안좋다고 이야기 할 때 마다 그는 말했다.
"진짜 임신이 된 거 아냐? 난포 2개면 쌍둥이면 어떡하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말라고 면박을 주면서도,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쩌지 생각하며 '다태아 임신', '난포주사', '난포 2개' 등등 여러 검색어로 돌려가며 글을 읽었고 점점 임신과 착상에 대한 정보가 늘었다. 어느 날, 요가를 다녀 오다가 문득 내 몸의 컨디션이 지나치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배란 10일째였다. 남들은 착상기에 기초체온이 오른다던데 내 기초체온은 36.7~37.0에서 유지되었고 몸의 붓기도 아랫배에 콕콕거리던 통증도 사라졌다. 정말 말도 안되는 '감'이었지만, 이번 텀은 임신이 안되었나보다 싶었다. 남편에게 기대하지 말란 말을 던졌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배란 11일째가 되던 주말 의사가 생리예정일 전에는 절대 손에 대지 말라던 '얼리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댔다. 단호박 1줄. 그 다음날에도 확인을 했다. 또 1줄. 2시간 뒤에 또 보고 3시간 뒤에 또 봤지만 1줄이었다.
괜찮을 줄 알았다. 우리는 자연 임신을 세 번 시도하기로 했고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남았으니까. 시간에 연연하지 말자고 되뇌었고 내 삶은 그렇게 흘러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확인을 하고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다가 남편의 옆모습을 보았다. 나를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그를 보다가 드디어 나도 그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와 나를 닮은 아이와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면 좋겠다. 둘이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딩크도 고민했는데 임신 시도를 이제 한 번 해놓고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아들이면 나를 닮고 딸이면 오빠를 닮아야 돼."
"딸이 엄마 닮아도 돼. 근데 이마 넓은 건 안닮았으면 좋겠다.ㅋㅋ"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우리의 가족'이 어떤 형태일지 상상했던 거다. 남편과 나누는 대화의 영역이 확장되어 취미나 일의 영역에서 한발자국 나아가 미래를 그렸던 그 한 달이 나에게는 큰 의미였다. 제법 우리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육아관에 대해서 논의하며 서로의 다른 면모도 보았다. 가족을 꿈꾸는 행복을 조금 맛보고 나니 1줄의 임신테스트기가 야속했다.
"나 조금 속상해. 안 괜찮아."
남편에게 밑도 끝도 없이 속상하다고 투덜거렸다.
"괜찮아, 우리 몇번 더 노력하기로 했잖아. 둘이 지금도 행복하고, 문제도 없잖아."
앞으로 이런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몇번이나 더 타야 할까. 난임 병원에 다니며 6회씩 시험관을 하던 분들의 블로그 글을 읽다가 마지막 연재글에 태아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났고, 존경심이 생겼다. 아이를 갖겠다는 일념과 부부 사이의 사랑으로 그 모든 과정을 극복했으니 그 사이는 또 얼마나 단단할까.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경험으로 나는 벌써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조금 더 생겼다.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안 생기면 안 낳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제 남편과 정말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