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돌아보는 마흔의 성찰
내가 마흔이란 나이와 마주치게 될 것을 서른 아홉까지도 실감하지 못했다. 삼십대까지는 조금 떠돌고 덜 운동을 해도 괜찮다고 은연 중에 생각했다. 친구들과 진창 술을 마시고 나도 며칠 조심하면 금방 몸은 괜찮아졌고, 주변에 전직을 하거나 승진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고 ‘젊음’ 앞에서 못할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연금펀드에 돈을 넣는 것도, 상급지의 집을 사는 것도 40대가 되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40대로 진입을 하고 나니 서른 아홉의 나와 사십의 내가 ‘너무나도 똑같다.’고 느껴졌다. 승진에 대한 고민도, 임신에 대한 고민도 그 무엇도 사라지지 않았다. 마법처럼 상급지의 집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 계획이 갑자기 생기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평범한 교사였다. 성실히 일했고, 가끔 문제집을 쓰거나 외부일을 하며 커리어도 조금씩 쌓였지만 그것들이 단번에 내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마흔이 되어서야 삶의 무게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마다의 과업을 이루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래 품어온 꿈을 실현했고, 운동을 통해 원하는 몸을 만들어냈으며, 또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나의 과업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럴수록 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일에 전념하며 멀어진 학위 과정,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만 같은 승진의 길. 그 어느 것도 나를 온전히 설명해 주지 못했다. 아직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그 고민 끝에서 만난 것이 글쓰기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풀어보고 싶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의 가치관, 남편에 대한 새로운 사랑, 시댁과의 관계 등 삶의 한가운데서 마주한 사소하지만 큰 그 감정들을 글로 남겼다. 그렇게 기록을 쌓아 가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 관계를 이루는 힘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게 되었다. 글쓰기가 내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이다. 독립 출판, 전자책 출판 등 마음만 먹으면 내 안의 콘텐츠를 풀어내 책으로 엮을 수 있다. 그래서 인지 국어 교사로 아이들과 글을 읽고 쓰며 최근에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자주 마주한다. 마음이 복잡한 순간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저런 텍스트를 쏟아 내기도 한다.
동시에 이 욕망을 고백하는 일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이기에, 책 한 권을 쓰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대에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글을 인터넷에 공개해도 될지 검열을 거치기도 한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모든 글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이 사소한 글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책이니 나만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나를 돌아보며 성찰한 흔적이 엮인 개성 있는 나의 모습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믿는다. 브런치스토리에 쌓아 온 글들은 내 삶의 질문을 담은 기록이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대화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 기록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누구였고 무엇을 꿈꾸었는지를 조금 더 선명히 말할 수 있으리라. 이제 나의 꿈은 글쓰기를 통해 ‘나를 알아 가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