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준비, 아이를 가져야겠어

커리어를 접어두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하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

by 구름빛

결혼을 하기 전부터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이었다. 친구 A는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가 너무나 간절해서 임신을 시도했다고 하였고, 지인 B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자신만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초조했다고 말했다. 나는 결혼부터 이미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아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둘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은 행복하지만 ‘아이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오히려 임신 후 찾아올 경력 단절, 출산 전까지 일을 하면서도 걱정해야 하는

나의 건강, 아이를 낳은 후 가져야만 할 무거운 책임감, 분명 부족해질 경제적 문제까지 ‘아이를 갖지 말아야 할 이유‘가 좀 더 분명했고, 가시적이었다.


남편도 아이에 대해 간절하지 않았다. 당연히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는 것이 수순인 줄 알았던 그도, 40을 훌쩍 넘어 결혼하다 보니 아이가 선택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를 갖게 되니 출산 후 닥쳐올 미래가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되는 대로 살자고 선택을 유보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나이가 아주 들어 지금의 선택이 후회될까 두려워서 딩크를 선택할 용기도 없었다. 남들이 하는 것은 해보고 싶기도 했고, 신랑은 젊은 날 꿈꾸었던 아이가 함께 하는 단란한 가정에 대한 미련도 조금 있었다.


그러던 중 근종 수술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우리의 선택은 6개월가량 더 미루어졌다. 결혼 후 2년의 시간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고 나는 학교에서 일을 시직한지 약 12년만에 비교적 여유있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40이 되었고 업무는 여유가 있었으나 여러모로 마음이 초조했다. 주변 친구들은 기업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다져나가며 중책을 맡기도 했고, 드디어 교수가 되는 등 2-30대에 쌓아 올린 결실을 조금씩 맺기 시작했다. 나도 나름대로 전국 단위 문항도 출제해 보고, 문제집을 쓰고 교과서 검토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마음이 허했다. 이렇게 앞으로 20년을 달리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어떤 역할로 삶을 살고 있을까. 여행을 다니고 돈을 모으고 착실히 더 큰 집으로 넓혀가고 그것이 행복일까.


나는 누군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했다. 인정욕과 사랑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다. 그러던 중 옆집 아이만 보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생리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기대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 밤 갑작스럽게 그 결심이 찾아왔다. ‘아이를 낳아야 겠다.’


외부에서 알아주지 않는 커리어를 쌓아가는 일에 염증을 느낄 무렵, 그와 내가 함께 만든 생명체를 이 가정 안에서 키워 내는 일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 감정의 공허함이 채워질 수도 있겠다는 미약한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잠을 자고 있는 나와 다른 생명체인 남편만 이렇게 바라 보고 있어도 마음이 충만한데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우리의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매우 늦었지만 ‘그와 나를 닮은 아이’가 궁금해졌다.


마음이 뻥 뚫린 것만 같은 그 공허함이 나를 이 결정으로 이끌었기에 죄책감은 있다. 이기적인 결정이라고도 생각한다. 가끔 아이를 낳은 게 최대 업적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댓글도 심심치않게 보이는데, 나는 내 최대 업적으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결정을 한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비범한 사람이라고, 대의를 위해 아이를 낳겠는가. 나는 나를 위해 산다. 그래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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