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 남편의 하루
결혼 후 세 번째 생일이다. 우리의 신혼은 무탈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인스타그램에 중독되어 있었다. 특히 주방용품을 사모으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월급 외 부수입이 생기면 20만원짜리 빵칼도 사고,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해 보니 아주 좋았다던 양념통도 샀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빠져들다 보니 인플루언서들의 삶이 좋아보였다. 그 즈음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지인이 자기 월급은 모두 자기를 위해 쓴다며 명품 목걸이와 가방을 샀고, 아무리 그래도 남편과 같이 생활하기로 한 게 '결혼'인데 저래도 되나 괜히 속으로 오지랖을 부리다가 조금씩 당당한 그녀에게 감화되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 생일을 1달 정도 남겨둔 어느 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늘 같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나, 좀 그런가? 명품이 오바인가 싶었는데, 결혼할 때 받은 이 목걸이 나 정말 잘 차고 다녀서 만족스러워!! 돈모아서 하나 더 살까??"
그냥 그 날따라 떠올린 생각을 남편에게 가감없이 말했고 짠돌이인 남편이 나에게 한마디 할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달랐다.
"하나 사면 두개 사고 싶어지고 그렇지 않을까? 그래도 뭐 영 못살 건 아니긴 하지. 진짜 갖고 싶어??"
"오 사지 말라고 안하네? 됐어.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 됐어. 못사게 했으면 사고 싶어졌을 거 같은데, 사라고 하니까 또 좀 굳이 사야하나 싶네."
그랬다. 막상 사라고 하니까,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사고 싶은데 못사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갖고 싶어질 것 같았는데 사고 싶을 때 사도 된다는 상황을 확인받고 나니까 소유욕이 좀 덜해졌다.
생일날 남편은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지 않은 채 바삐나갔고 나는 아침부터 조금 토라져있었다. 나는 생일마다 열심히 미역국을 끓여주었는데! 라는 생각에 툴툴거렸다가 곧 잊었다. 정신없는 하루였고, 저녁에는 친정 식구들과 밥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남편은 한시간 조퇴를 하고 우리 학교 앞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랬다가 배탈이 나서 조금 늦을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생일이라 이벤트라며 꼭 학교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하는 그가 귀여웠고 함께 친정 식구들과 갈비를 뜯었다. 그리고 밤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씻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갔던 그가 큰 백팩에서 불가리 쇼핑백을 꺼냈다.
"이거 뭐게??"
"헐!! 목걸이 샀어?? 설마?"
"아니 쇼핑백만 보고 어떻게 알았니...."
생일 날 그는 한 시간 조퇴를 하고, 유난히 더웠던 그 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백화점 앞에서 웨이팅을 했다. 그리고 불가리에서 비제로원 목걸이를 픽업했다. 그는 5일전부터 지점에 문자를 해서 재고를 물어봤고 30도가 넘은 그 날 줄을 서서 목걸이를 샀다고 했다.
환불도, 교환도 불가한 그 목걸이를.
남편은 짠돌이다. 정가에 물건을 사는 법이 없다. 결혼을 할 때, 나에게는 명품 가방과 목걸이를 사주었지만 돈이 아깝다며 막상 본인 몫으로는 결혼 반지 하나만 선택했고 양복을 살 때도 조금이라도 싼 걸 사려고 눈치를 보는 게 빤히 느껴졌다. 나는 조금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사업이 한창 잘될 때 10대를 보냈고, 파이어족이 된 아버지의 경제력 덕분에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남편은 조금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족이 합심해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나와는 배경이 달랐다. 프로포즈를 할 때 처음 명품 매장에 들어가, 가방을 사서 주면서도 일주일 안에 교환을 해야한다는 말에 놀라 본인이 원래 프로포즈를 하기로 선택했던 날도 아닌데 갑자기 가방을 주던 그였다. 정말 미안하지만, 일주일 안에 맘에 안들면 바꿔야 하니까 멋없지만 지금 준다면서.
그런 그가 환불도, 교환도 불가능한 소시민의 사랑을 결혼 후 보여준다. 담대하다. 나는 그 18K 목걸이를 걸었고, 감동했다.
"아니 내가 이 목걸이 관심있는 걸 알고 있었어?"
"저번에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할 때, 이 목걸이 얘기 했었잖아. 예쁘다고."
"내가??"
"응 그래서 그거 산건데."
내 말을 귀담아 듣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 것이 실감났다. 삼백이 넘는 돈을 살 수 있는 남자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짠돌이는 어디갔을까. 새롭기도 했다. 그에게 나는 그의 가족이었다. 그에게 결혼은 이런 건가보구나 싶었다. 나를 선택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해주겠다는 남자의 결심. 그 날 침대에 누워 그가 조용히 이야기 했다.
"나는 좀 미안해. 잘살던 네가 나를 만나서 아쉽지는 않을까 가끔 생각해. 그런데 아침마다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주는 너를 보면 행복하기도 하고 그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싶어. 나중엔 여러가지 사정으로 못해줄 수도 있잖아. 대출이 늘거나 하면 또 못해줄거고. 지금 그래도 여유있으니까."
그에게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낱낱이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 집에 와서 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던 것같다. 철부지로 자라서 화장실 청소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찡찡대던 나 대신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해주던 그를 떠올렸다.
나의 남편은 매일 만원도 채 안쓴다. 무슨 일을 진행할 때 셈이 늘 먼저인 사람이다. 용돈은 개인당 30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나를 위해 명품을 샀다. 이제 결혼 3년차. 슬슬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가족'이라 여기며 아껴주는 남편을 보며 우리의 사랑이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짐작했다.
나는 40대에 결혼을 하면 따뜻함 따위는 이제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나이에도, 사랑은 계속 짙어진다. 늦게 시작했다고 덜 여무는 사랑은 없다. 아침이 되니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흔들리면서 그에게 명품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나는 씻고 목걸이를 걸었다. 남편은 출근해서 자랑할 건지 물어보았고, 참 촌스러웠다. 그런데 예뻐보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 담대함이, 사랑이 알려졌으면 하는 그 마음을 나에게 들켰다.
"1년치 용돈 다 썼으니까 당분간은 굶어야겠어."
그에게 용돈을 모아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낭비가 나를 위한 목걸이라는 것이 행복하다. 나의 허세가 그의 사랑을 만나 행복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