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리 고양이

by Hache

대평리에서 점심을 먹고 마을길을 걷다 고양이를 만났다. 길고양이 치고는 제법 통통하고 털에 윤기가 있는 것이 개냥이라서 사람들에게 대접을 잘 받고 다녔을 것으로 추측됐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시 거부하지 않고 손길을 받는다. 고양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몇 마디 "야옹"하며 받아주다 금세 싫증이 났는지 제 갈길을 가버린다. 길을 따라 들어선 카페와 음식점을 하나씩 기웃거리며 원하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볕을 쬔다. 마중 나온 사람들의 손길을 받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새로운 흥미가 보이는 곳으로 눈을 반짝이며 떠난다. 누구에게도 길게 정 주지 않고 훌쩍 떠날 줄 아는 도도한 매력의 고양이.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귀여움, 털, 무늬, '병신미'(똑똑한 척 적당히 낮은 지적능력으로 인한 이해할 수 없는 예외적 행동들) 등등, 그중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구석은 도도 함이다. 이는 강아지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다. 강아지는 끊임없이 달려든다, 한 없는 사랑을 갈구한다, 원하는 바를 온몸을 다해 1차원적으로 표현한다, 자신을 쓰다듬어주고 돌봐주길 원한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되길 원한다. 이런 강아지의 특성들은 독자적인 삶과 개인의 영역을 중시하는 나와는 맞지 않다. 반면 고양이는 '부르면 오지 않는다'(심지어 이런 제목의 영화도 있다)라고 할 만큼 스스로의 의지와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지인에게, 친구의 긴 출장으로 인해 고양이 두 마리의 '임시 집사'가 되어야 했던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3개월을 지인과 함께 지낸 고양이들은 출장에서 돌아온 '원래 집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 "캬~"하는 공격의 소리로 거부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 고양이 중 한 마리는 새끼 때부터 키워왔던 녀석이었는데도 말이다. 일본에서는 창문을 열어놓고 고양이를 기른다고 한다. 원할 때 자유롭게 외부활동을 하고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수년을 함께한 고양이들이 산보를 나갔다가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애초에 고양이는 누군가의 '애완'이 될 수 없는 것이지. 적당한 거리의 유지, 원하는 만큼만의 교감, 필요 이상의 터치와 돌봄에의 거부, 타인에 종속되지 않음, 녀석들은 나와 같은 부류인 것이다.


문득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두 개의 동아리에 개인적인 흥미로 들어가서 한 학기 정도의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흥미가 떨어지자 곧바로 나왔던 일, 지나치게 계속 연락을 하고 가까워지려는 친구의 연락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일, 집단 행사이니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종용하는 학과 선배의 요구들을 매번 거절했던 그 시절, 그땐 이런 나의 행동들이 사회 부적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집단에 오래 있지 못하고 친구이든 집단이든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더 깊게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오려 하면 무조건 쳐내는 나의 행동들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스스로 목이 턱턱 막혀오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보면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무언가 잘 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회생활을 잘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걱정도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군가에게, 집단에게 깊게 소속되지 않아도 나는 내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중이고 나름 만족스럽게 '잘' 하고 있다. 스스로 '주인'을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떠나는 것을 인간의 잣대로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길...


고양이를 한참을 더 쫓아가니 어느새 녀석은 마을을 뒤에 두고 바닷가 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자신을 반기는 사람들도, 따뜻한 카페의 앞마당도, 어느 하나에도 미련을 남기지 않고 쿨하게 떠난다. 떠나버린 녀석을 두고 문득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그(혹은 그녀)가, 무엇에도 긴 시간 몸과 마음을 두지 않는 그가 부러워진다. 무언가를 소유할 때마다 생기는 나의 불안이, 소유한 것들을 잃을까 두려움의 사슬이 연속되는 나의 편집증적인 삶이 안타깝고 슬프다.


늘 여행자와 같은 태도로, 자유의 향기를 품고 일상을 살아가는 저 대평리 고양이. 언젠가 그렇게 살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