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이 걷기만 한다.
출근길의 지하철에 있을 때면 종종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매일 가고 있는데, 개중엔 늘 보여서 안면을 익힌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 그 비좁은 움직이는 철재 공간에 함께 모여 있는데 누구 하나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아, 손 안의 작은 기계만 들여다보고 있어, 무표정한 얼굴이야.
한참을 관찰하다 보면 문득 무서워진다. 매일 보는 이것들이 인간은 맞는 것인지, 정해진 역에 도착하면 오르내리긴 하는데 정해진 움직임만 있을 뿐, 어떤 소리도, 작은 표정 변화도 없으니깐,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는 뭐하러 젊음의 시간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희생시켰을까? 원하지 않는, 국가가 규정한 ‘의무’라는 감옥에 갇혀 벗어날 생각조차 거세당해왔을까? 어른들이 얘기했던 성공이란 게 고작 이런, 오늘 내 눈앞에 보이는 비인격체와 같은 인형이 되어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함이었을까?
‘정처 없이’라는 말이 그저 사회 부적응으로 무얼 할지 모르는,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실패한 인생’에 쓰이는 말인 줄 알았는데, 최정윤의 노래 가사를 듣다 보니 그건 이 사회에 적응을 ‘성공’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같이, 정처 없이, 수년, 수십 년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지하철을 오르내려야 하는 나야말로 ‘정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