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실 이제와서는 어찌 되든 다 상관없다 싶어. 넓은 도로, 높은 빌딩 숲, 수많은 인파가 모인 이곳의, 이 그림의 일부가 되면 뭔가 나도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반짝이게 되지 않을까? 멎어있는 심장을 쿵쾅거리게 해 줄 만큼 강렬한 자극을 받을 많은 사건들이 날 찾아오지 않을까? 따위의 상상도 했더랬지. 음... 근데 그렇지 않더라고. 환경적 변화가 날 어찌해줄 거라는 기대는 초등학생이 로봇 만화 보며 변신하겠다고 꿈꾸는 것 같은 현실성 없고 유치한 상상 비슷한 것이었어. 결국 어디에 있건 나는 그냥 ‘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더라고. 재미없는 인생이 어디 달라지진 않더라.
우울하고 의욕 없는 나날이 이어지는 건 힘든 일인 것 같아. 요즘은 초월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 어차피 내가 가진 것들은 분에 넘치고 또, 불가결하게 필요한 것들도 아니니 뭐, 딱히 삶에 큰 기대 같은 것들도 없어진 마당에 그냥 모두 필요한 곳에 남기고 멀리 떠나버려도 별로 아쉬운 마음이 안 들겠다 싶기도 해.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배웠던 비유적인 그 아이 ‘검은 개’가 맘 속에 똬리 틀고 앉아버렸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끙끙대며 버텨보는데 기댈 곳이 보이면 맘이 약해져서 무장해제해버리고 싶은 어리광이 생기기도 해.
‘바라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아’
‘믿지 않으면 미움은 싹이 트지 않아’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역시 이게 유일하게 맞는 것일지도.
혼란 속, 오늘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