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역

기적

by Hache

출근길의 잠실역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역에서 내렸다. 하차한 인원의 대다수는 2호선 환승역을 행해 이동한다. 역시 모두의 발걸음엔 의심이 없다. 나 역시 흐름에 따라 이동하는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막 내린 지하철 문 앞에 그대로 멈춰 선 듯했다. 어디로 갈지 몰라 좌우를 번갈아 보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다. 환승통로의 계단을 오르기 전 뒤돌아 봤다. 여전히 그 사람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걷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뇌리에 그 사람이 남았다. 내 걸음은 당연한데, 대다수가 가는 방향으로 의심 없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뒤처지지 않게. 그 사람은 뭘까. 지난 통화내용 때문이었을까...


2호선으로 가는 환승통로는 꽤 넓다. 양 방향으로 열명 이상의 도보가 확보되는 너비이다. 길이는 약 2km. 그 안이 매일 아침, 매 시간, 매 10분마다 사람으로 가득 찬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볼 수 있는 양이다. 그리고 굳이 계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이다.


나는 생각한다. 이만큼 많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만, 정해진 이 2호선 환승통로만을 매일, 매달, 매년, 수십 년을 걷는다. 생각 없이, 의심 없이, 몸이 반응하는 그 방향으로 말이다. 이게 상식적인 확률일까?


사람은 누구나 각 개인이 가진 특성이 있고 욕망이 있다. 삶의 방식도 당연히 개개인마다 다르며 또 당연히 각자가 가진 꿈이 있다. 같은 사람은 결단코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십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정해진 이 통로를, 하나만 존재하는 이 길을, 어쩔 수 없이 걷게 된 것이 아닌 모두의 순수한 자유의지로 ‘동일한 선택’을 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서술형 문제가 돼야 할 가장 중요한 개인의 인생이 사회라는 시스템을 만나 누군가에겐 원하는 선택지 조치 없는, 하지만 사회는 그곳에 정답이 있다고 얘기하는, 문항 오류가 있는, 선택지가 두세 개에 불과한 선다형 문제를 강제로 풀게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매일 아침, 난 불가능한 확률이 이루어진 기적을 목격하고 나 또한 기적의 하나가 되는 것이지.


시스템화 된 욕망, 시스템화 된 꿈, 계획되어 배치된 삶. 스스로의 선택이고 이게 행복이라는 최면에 걸린 사회의 마리오네트들. 그래, 차라리 깨지 말이라. 그 편이 고통은 없을 테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