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2

by Hache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날은 홀로 남겨진 하루가 더 길고, 기운이 없는 느낌이다. 불은 켜 두고 가지 않아 공간은 더 그늘져 밤과 낮이 잘 구분되지 않아 현관 앞에 턱을 괴고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내게 하루 중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생생히 느끼는 시간은 그와의 저녁시간 외출이다. 경험상 오늘 같은 날은 건너뛴다. 난 몸에 물이 묻은 채로 다녀와도 즐겁다. 날이 더워진 탓도 있고 또 어차피 격렬히 공원을 돌고 온 날은 집에 온 후 그가 씻겨주기에 괜찮다. 혼자 나갔다 와도 좋은데 그건 어쩐지 허락해주지 않는다. 계속 재촉해봐도 어쩐지 어두운 표정과 한편으로는 평소보다 무거운 음색으로 무언가 얘기하며 꼼짝하지 않고 나를 오히려 끌어안고 평소보다 열심히 쓰다듬는다.


어쩔 수 없지.


식사를 하고 속이 좀 더부룩해서 딱 한 바퀴만 나갔다 오면 좋겠지만 이내 포기하고 작은 내 공간으로 들어간다. 내일은 나갈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어보며 잠을 청한다. 온종일 자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씻고 나와 곧장 불을 끄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어둑어둑한 낮시간과 같아 금세 잠이 든다.


처음엔 공포가 컸다. 늘 지내오던 투명한, 다섯 발자국도 안 되는 조그만 경계의 공간에서 갑자기 좀 뛰어다녀도 될 것 같은 비교적 너른 곳으로 오자 꿈꿔왔던 탁 트임에 대한 자유의 만끽이 아닌 두려움이 먼저 일었다. 왠지 내 공간으로 보이는 폐쇄된 조그마한 곳이 있어 그곳으로 얼른 숨자 이내 마음이 좀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과는 상반되게 날 데려온 그는 이곳에 피신해 있는 나를 보고 싱글벙글 즐거운 안색이었다. 뭐라고 소리를 내며 날 향해 손을 뻗자 잠시 움찔했지만 가만히 보니 그렇게 위협적인 대상은 아닌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왠지 이젠 꽤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해 나갈 것이란 예감에 마음가짐을 좀 달리 해보자 생각했지만 첫 만남에 어디까지 그를 믿어도 될지 조금은 두고 보자는 경계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난 어디로 온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스톡홀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