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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작고 투명한, 사방이 막힌 공간이었다. 머리 위는 뚫려있고 사방의 투명한 벽은 관리한 지 시간이 꽤 지난 듯, 투명이지만 투명하지 않은 상태. 덕분에 옆 친구와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명확히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처음 그를 인식한 날로부터 꽤 많은 어둠과 빛이 왔다 가는 현상을 봤을 무렵, 앞쪽 벽에 있던 그가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졌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들도 모두 잠잠해진 때, 잠이라도 잘려 치면 밝을 때 이 투명한 공간 안에 딱히 갈 곳도 없었기에 온종일 잠만 잤던 터라 잠도 오지 않아 벌겋게 뜬 눈으로 어둠에 동화되곤 하는 날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나와 함께 얘기해줬던 것이 바로 벽 너머의 그였다. 어둠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와는 전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무척 많고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벽에 걸린, 내 몸보다 훨씬 커 보이는 다양한 색을 내뿜는 거대하고 각진 물체에서 봤던 것들은 우리 대화의 가장 즐거운 주제였다. 새파랗고 경계가 없어 보이는, 내 생김새와는 다른 유연하게 생긴 것들이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움직이고 있는 공간이라던지, 식사에 종종 포함되어 나오는 것과 비슷한 색 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내 친구인 듯 해 보이는 무리들이 또 끝없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우리가 겪은 것은 다섯 발자국 정도 움직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조그만 곳이 전부였지만, 우리가 본 그곳들엔 어떠한 제한도 없이 어느 곳으로도 마음 가는 대로의 자유가 있어 보였기에, 그래서 마음 한편에 막연히 언젠가 이곳이 아닌 곳에서의 우리를 꿈꿨다.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되는 날을 그 막막한 어둠 속에서 꿈꾸며 꼭 함께 가자고 약속했는데...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해 그곳에서 서로 못 알아보면 어쩌냐고 낄낄대며 웃기도 했다. 그저 상상이지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아주 잠깐의 행복이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작은 행복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젠 그 목소리 조차 들을 수 없군. 실은 그 친구에게 고백하지 않았지만 이런 경험이 또 처음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맘 한구석이 아려오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딘가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새우던 밤을 기억해 주겠지. 아니, 그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나눴던 그 대화 속 자유의 공간으로 갔을지도 모르니 작은 희망을 담아 축복도 덧붙였다.
하루는 이 공간이 무척 번잡하다고 느껴졌다. 평소보다 유독 많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며 귀를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차에 곧 내가 있는 공간에 반쯤의 어둠이 드리웠다. 위를 보니 뚫린 공간으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한참을 관찰하고 다시 사라졌다. 뭘까? 친구가 사라진 그것과 연관된 일 일까? 곧 두려움이 일어 온몸이 벌벌 떨렸다. 나도 사라지는 걸까? 온통 소리를 질러봤지만 허사였다. 번잡한 이 공간 속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갑자기 나의 두려움이, 내 행동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 공간에서의 탈출을 꿈꿨는데 정작 그럴 가능성이 보이자 두려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