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포켓몬

by Hache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딱히 기쁘거나 즐거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경우 힘들고 짜증이 났다. 우연히 엄청난 광경을 보게 되었을 때 잠시 경이로움을 느꼈다. 지나치게 다리가 아프고 이제는 먹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쉬어가는 겸 식사를 했기에 그 시간만큼은 꽤 행복함을 느꼈던 것 같다.


긴 길은 그렇게 대체로 부정적이고 간간히 긍정적이었다. 그래도 또 걸었다. 늘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또 걸었다. 무언가 강박증처럼 기회가 날 때마다 반복했다. 특별히 행복하지 않으면서 또 발전적이지 않은 일에 크게 소비하는 유일한 지출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특별히 지출할 가치 있는 무언가는 나의 삶에 잡히지 않았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보니 생은 그저 적당한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는 직감이 든다. 여기서 포인트는 ‘적당한’에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모두는 스스로 별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나의 인생은 세상을 물들일 멋진 가치와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은, 사실은 모두 적당할 뿐인데 어릴 땐, 아니 30대가 지나도록 그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면서도 외면한 것일지도 모른다.


별을 쫓는 아이에서 적당히 시간 때우는 어른으로 한 단계 성장해 감을 느낀다. 인생은 포켓몬 진화 같이 드라마틱 하진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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