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

by Hache

노량진역에서 내려 컵밥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큰길을 두 블록 정도 걷는다. 사육신 공원이 보일 때쯤 우측 골목을 따라 두 블록 정도 들어가 왼쪽으로 있는 할인마트를 끼고 돌아간다. 완만한 언덕을 3분쯤 오르면 길의 오른편에 고시학원이 있었다.


차가 한 대 다닐만한 좁은 골목, 최소 30년은 됐음직한, 서울 현대화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에도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풍화되고 더럽혀진 낮은 건물들, 주택가. 그 가운데엔 수많은 고시원 건물들이 있다. 가정의 경제적 보호 밖에 있는, 먼 곳에서 떠밀려온 사회 최 약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해당 지역 노인들의 돈놀이 현장. 무보증 월세 약 30에서 높게는 50까지 ‘관(혹은 방이라고 부른다)’의 가격이 형성돼 있다. 역 주변에 있으면 역세권, 역 앞 도로에 인접해 있으면 도로세권, 학원 근처에 있으면 학원세권으로 가격을 50선까지 높여 놓는다. 세 권은 조금이나마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50은 월세로서 굉장히 높은 가격인데 3에서 500 정도, 그 알량한 보증금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선택지는 없다.


학원에서 곧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을 3분 정도 더 오른다. 언덕을 다 올라 오른쪽으로 꺾어 이번엔 꽤 길고 가파른, 경사 40 degree 정도의 언덕을 5분 오른다.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경사 30 degree 정도로 낮아진 언덕을 2분 오른 후 또다시 우회전. 7분 정도 비슷한 기울기의 언덕을 오르면 노량진 해발고도 가장 높은 곳에, 주위에 막힌 곳 하나 없어 뻥 뚫린 하늘이 보이는 그곳에 고시원 건물이 두 개 있다. 같은 이름을 쓰는 걸 보니 같은 사업체인 모양인 그곳엔 건물당 대충 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들어있다.


주경, 야경 모두 꽤 멋졌다. 이태원 클래스에 나온 남산 배경의 언덕 야경만큼. 고시원 옥상으로 올라 북동쪽을 바라보면 여의도 63 빌딩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 한강과 어우러진 경치가 마음에 들었다. 한강 불꽃축제도, 이곳 사람들과 축제란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이곳에선 완벽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노량진 고시촌 언덕 가장 높은 곳이라는 현실만 잊으면 옥상 자릿세를 20만 원 정도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언덕 끝 그곳은 어느 것의 ‘세 권’도 아니므로 30 대 가격으로 0.5평쯤 더 넓은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고시원 생활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지방에서의 그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비교할 것도 없지만) 매우 열약했다. 침대는 정확히 ‘관’, 몸을 돌리거나 팔을 넓힐 수 없는 너비. 다리를 반쯤 덮는 판자는 나름 책상의 역할을 한다. 판자 위론 호텔에서 사용하는 300ml 생수 보관용 작은 냉장고도 하나 놓여있다. 고시원이니 책을 꽂으라고 3단 책꽂이도 하나 놓여있다. 침대를 내려오면 발 크기 만한 공간 너머 바로 문 앞 신발을 놓을 곳이다. 신발장은 없다. 선풍기가 침대 맞은편 벽에 걸려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물론 에어컨은 없다.


고시원 방에는 3에서 5만 원의 가격을 나누는 ‘룸 컨디션’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내창’과 ‘외창’, 이 말의 의미를 알려면 고시원의 생김새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고시원은 기본 소방법의 범주를 벗어난 방들이 많다. 불이 났을 때 기본적인 대피를 위한 복도의 너비라던지, 방을 다시 쪼갠 방의 가벽이 가연성이라던지 하는 것들이다. 맞다. 고시원은 복도가 있다. 복도를 기준으로 도로와 인접한 바깥방, 그리고 안쪽 방이 있다. 안쪽 방은 건물 맞은편으로 뚫린 것이 아닌 사방이 막힌 완벽히 폐쇄된 공간이다. 유일하게 난 30cm 남짓의 정사각형 창문이 복도로 나 있을 뿐이다. 이게 ‘내창’이다. 올드보이를 보면 사방이 막힌 방에 갇혀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시원 내창 방보다는 약 7배 정도 낫다. 난 외창을 선택했다. 홀로 지켜내야 할 마지막 인권이었다.


흔하게 보인다 손쉽게 얻어내는 이들. 나를 지킬 각오를 하지 않아도, 기어코 움켜쥐지 않아도, 그저 생을 즐김으로써도 때가 되면 자연스레 얻게 되는 이들. 기꺼운 마음으로 세계를 누벼본 이들. 생존 너머를 생각해도 되는 이들. 내게 인권의 마지노선이었던 한 평이 그들에겐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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