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20 하반기 - 2021 상반기

by Hache

지난 1년간의 독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남겨본다.


그 후. 나쓰메 소세키


결말이 붉고 어지러운(멀미 나는 이란 말이 더 적절할 듯) 시각적 인상으로 남아 있는 ’그 후’. 온실 속 도련님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후 겪는 불안하고 어찌할 줄 모르겠을 마음을 글로 표현했는데 어떻게 이리 영화를 본 것 마냥 시각적 이미지로 강하게 각인됐는지. 괜히 ‘소세키 문학’이 아니다.


밤하늘은 올려다보는 그대에게 상냥하게. 마쿠라기 미루타


마찬가지로 시각적 인상으로 남아있는 ‘밤하늘은 올려다보는 그대에게 상냥하게’. ‘그 후’가 강렬한 독립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라면 대조적으로 이 책은 경쾌한 연애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리듬감 있는 내용 전개와 있음 직한 가상 세계가 현실의 배경으로 잘 어우러져 독자로 하여금 직접 그 장소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어나게 만든다. 주인공 연인 두 사람의 주요 배경인 시부야 빌딩 옥상에 가서 애드벌룬 타입 오퍼스 서비스를 올려보고 싶다. 아, 표지가 정말 예쁘다.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무너진 자본주의의 끝에 선 일본 청년들(이젠 전 세계인 듯)이 어떻게 자아를 잃고 시스템에 종속되어 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문제작! ‘편의점 인간’은 출간된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를 간직한, 아니 점점 심화되어가는 사회로 인해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 부디 모두 이 현실이란 지옥에서 자신이 무엇인지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헤이리 시네마에서 영화로 먼저 접한 책. 영화는 책의 10분의 1만 담아두었다. 영화에서 다룬 식의 순수한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순한 맛 불륜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전쟁, 망명, 혼혈 등 한 개인이 겪는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 사랑이란 가치가 자신과 주변인들에 어떻게 위로를 주는지, 중심을 잡아주는지, 또 그것의 힘이 에로스가 아닌 삶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중요한 가치를 알려준다. 뿐만 아니다. 이런 극한 상황 속 서사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 버무려낸 클래식 기타란 장르 자체에 대한 내용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다. 영화가 책 보다 나았던 부분이 바로 이 클래식 기타 연주가 직접 나왔다는 부분이다. 그 연주들 만으로도 굉장해서 이를 위해서 만이라도 다시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분야를 가리지 않는 범지식적 영역과 그 이해에 관한 부분이다. 범국가적으론 전쟁과 망명, 국제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한 개인으로는 경계선 상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겪는 문제와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를. 형이상학적으로는 클래식이란 장르와 그 안의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이상과 현실, 그리고 고뇌까지. 범주와 분야를 막론하지 않고 의도한 것들을 자신의 글로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공부를 했는지는 수 페이지에 달하는 빼곡한 참고문헌을 보면 알 수 있다. 자못 경이롭기까지 한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저 책 한 권 내보려고 막글을 써대고, 그걸 책이라고 내놓는 한국 출판 문학계의 세태와 넘을 수 없는 격의 차이를 보여준다. 일단 발 들여놓으면 게이치로 문학에서 헤어나긴 쉽지 않다.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다른 많은 평균선 상을 넘지 못한 글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싶다면 도전해보길.


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두 번 말해 무엇하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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