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by Hache

어디 있을 무언가를 쫓아 삶을 살았지만 얻어낸 결론은 ‘그런 건 없다’이다. 애초에 전제가 모호하니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요즘 꽤나 일이 지루해졌다. 매번 모래성을 쌓고 방치하고 또 다른 모래성을 향해 가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퇴근 후 오래간만에 영화를 봤다. 이제는 한국 명절 특선영화 간판스타가 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노잉(Knowing)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지루함을 좀 달래고자 재난영화 리스트를 보다 충동적으로 재생시켰는데 이 영화,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형이상학적 의미를 찾는 교수가 허무함에 빠져 인생을 살다 우연히 재난을 기록한 예언서를 마주하게 된다. 미래의 날짜 기록도 있었는데 그 날짜와 위치를 알고서도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예언대로 사고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할 뿐. 최후엔 지구 전체가 플레어의 여파로 불타 없어지는 깔끔한 마무리까지. 이건 너무 맘에 쏙 들어오는 전개였다.


사실이 그렇다.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는데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우연히 태어나 세포 분열하며 늙어가고 때가 되면 죽는 것. 모든 지구 상 생물이 그러하듯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영화가 무척 현실적으로 보였다. 별 의미 없는 인간들이 별 의미 없는 것에 목매어 살다가 의미 없이 생태계의 변화에 의해 사라지는 것. 후련함이 느껴졌다. 오히려 답을 얻은 듯했다. 네가 찾는 그 어딘가의 무엇은 그냥 없는 거고 애초에 너 자신도 그냥 길가의 풀처럼 주어진 생을 이어나가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자만하지 말고, 과욕하지 말고, 절망하거나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말고, 그저 오늘을 보내라. 영화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찾는 것을 그만두고 오늘을 살아가 보려 한다. 그 오늘이 의미가 있건 없건, 지루하든 신나든, 그저 주어진 생의 흘러가는 시간이니 자연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그대로 느끼고 들풀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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