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 잠이 깼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저녁쯤 물 한잔 마셨던가? 대학 진학 이후부터 으레 그랬듯 누굴 챙기는 게 아니면 무언갈 먹는 일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날도 그랬을 것이다. 아침 교육학 강의를 두 시간여 듣고 용산역 앞 집을 나와 서울역으로 향한 뒤 남산도서관을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일주일에 네시간여 수업을 맡은 고등학교에 가기 전 세 시간 정도 다시 물리학 이론서를 공부하고 다시 남산을 내려와 충무로역인가? 에서 3호선을 타고 서북을 향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전공 강의를 다시 두 시간여 듣고 열 시쯤 되자 드라마를 틀었다. 그 해만큼 많은 공중파 드라마를 봤던 해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드라마가 끝나자 조금 허기가 졌지만 그냥 귀찮아서 대충 이런저런 음식을 생각하며 뒤척이다 새벽 두 시쯤 잠이 들었다.
사람이 배가 고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느낌에 말 그대로 눈을 번쩍 뜨고 그대로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 굴짬뽕 라면 세 개를 끓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시 반, 먹고 그대로 잘 수 없어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북쪽을 향해있는 복도 끝 테라스로 나가 남산타워를 보며 바람을 조금 쐤다. 남산타워가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크게 보여 그곳을 좋아했다. 미국 독립기념일엔 동북에 위치한 미군기지에서 벌이는 불꽃축제도 볼 수 있었다. 텅 빈 집에 라면박스를 쌓아 만든 책장을 쓰고 있었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가족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그곳에서 제법 자유를, 또 그와 함께 오는 고독함을 느꼈다.
아침 7시였던가? 긴급 뉴스에 여객선 침몰 상황이 중개됐다. 기우뚱 조금 가라앉은 배에는 일반 승객 외에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나왔다. 방송이 나왔으니 별일 없겠지 하고 티브이를 껐다. 또 아침 교육학 강의를 듣고 도서관을 갔다가 고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티브이를 틀어보니 여전히 침몰 상황은 해결이 안 돼있었다. 어쩐지 위정자들이 저곳에 많은 것들이 얽혀있음을 알고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까 말까 아직도 고민하는 듯 보였다. 티브이를 끄고 저녁 전공 공부를 시작했다.
두꺼운 플라스마 튜브식 티브이는 건물 지하 재활용하는 곳에 가져가세요 쪽지가 붙어있던 것을 가져다 쓰고 있던 것이었다. 17인치쯤 되는 작은 화면 안의 긴박했던 하루와 배가 고파 깼던 새벽이 우연히 같은 날이었는지, 아니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내 머릿속에서 이어진 시간으로 편집이 된 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문득 오늘 보이는 잿빛 하늘이 그날의 나와 같은 날 티브이 속 그곳을 기억하게 한다. 아직도 기억은 어두컴컴한 그 긴 터널 속을 지나는 중인가 보다. 시간은 현재와, 또 과거가 같은 시간인양 함께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