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을 걸쳐 입고 나올걸…
이르게 더워진 날씨 탓에 오늘도 별생각 없이 옷장 맨 위에 있는 티를 집어 입고 나왔다. 여름이라 그런지 비 오는 날인데도 에어컨을 계속 틀어준다. 앞자리에 앉은 하얗게 탈색한 사람이 입은 겉옷을 보니 금세 후회된다.
사무실도 에어컨 빵빵일텐테…
종일 벌벌 떨고 있겠지. 옆자리 동료에게 옷을 좀 빌릴까 생각했다가 바로 맘을 접는다. 그 정도로 친한 이가 지금 회사에는 없는 것 같다. 아니 없다. 뭐, 친구를 두는 성격이 아니라 어디었든 비슷했겠지만. 그냥 따뜻한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로 사가서 하루종일 마시고 있어야겠다.
차창엔 물방울이 맺혀있다. 흘러내리지 않는 걸 보니 그다지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는가 보다. 덕분에 늘 보는 거리 풍경이 조금은 서정적 이어 보인다. 지글지글 끓던 아스팔트 바닥도 짙은 회색 물감 풀어 붓으로 슥슥 칠해놓은 캔버스로 보인다. 캔버스에 물방울이 계속 떨어져 동그랗게 색이 번지는 모양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맑은 날 출근길엔 맘이 조급해져 뭐라도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낼까 이것저것 실은 별 도움도 안 될 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마음이 잔잔해진다. 내리는 건 빗방울인데 마음의 욕심이, 조급함이 내려간다. 서두르던 발걸음도 느려진다.
좀 늦으면 어때?
별일 아니다. 별 일 없다. 나 하나 빠져도 세상이 돌아가는데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이젠 잘 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빗방울이 내려온다. 내 세계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