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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 Jul 12. 2024

어느;날

ㅇㅅㅇ

앗 차가워. 종아리에 물방울이 느껴진다. 한 방울. 걸음에 좀 더 신경 쓴다. 천천히, 한걸음, 두 걸음, 역시 너무 느려서 안 되겠어. 찰박찰박. 빠르지만 내딛는 발걸음은 천천히, 앗 차가워. 두 번째 세 번째 물방울도 종아리에 앉는다. 소용이 없네. 체념하고 걸음을 시간에 맞춘다.


이맘쯤 마음은 들쭉날쭉 하다. 재작년엔 자정에 공원에 나갔다. 후두두둑, 어딘들 가려봐야 소용이 없는 기세에 무슨 기분이었는지 피하려는 마음은 접고 완전히 뛰어들었다. 찰박찰박 촤라락 찰박. 마음껏 뛰고 제멋대로 퍼져버리게 두었다. 더러워지건 말건 신경 쓰이지 않아 멋대로 스텝을 밟았다. 공원을 한 바퀴쯤 돌자 옷은 왜 입었는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왠지 모르게 후련한 마음이 됐다. 오늘 발 끝엔 리듬이 들리지 않는다. 조심조심, 별 효과도 없지만 찰박 소리가 날까 고양이 발 끝 내딛는 마냥 살포시 살포시. 역시 후련하진 않네.


에어팟을 귀에 얹는다. 좋아하는 일본 배우 호시노겐의 곡 Comedy, 다른 곡은 지루해져 반복재생을 누른다. 재즈 베이스 곡 중 호시노겐의 것은 어쩐지 에어컨으로 쾌적해진 실내보단 습기 느껴지는 길거리가 어울린다. 해가 가려진 하늘. 희망 따윈 없으니 평생 먹구름 아래 살아라 종용하는. 회색 구름 짙게 깔린 거리에 중력 방향 촘촘히 방사선 그어진 세상을 눈에 담고 찰박 찰박 찰박, 마지막 한 박자 찰박. 곡의 미디엄 템포에 맞춰 발 끝에 리듬을 실어 함께 반주한다. 어쩐지 아침 내 무겁게 깔린 일상의 무게가 한 박자 두 박자 미디엄 템포로, 느리지만 조금씩 희석되어 어느새 좀 가벼워진다. 이런 기분이 되면 아직 걸을 길이 남아있는 게 음… 나쁘지 않다. 이런 날은 드물다. 자정의 공원길만큼 빠른 리듬에 후련함은 자주 없다.


노랑 파랑 초록 손잡이들이 진동에 따라 같은 몸짓을 보인다. 오른, 왼, 앞, 앞, 좀 더 앞, 길게 이어지는 뒤. 표현이 힘든 작은 흔들림들, 예측되지 않는 진동은 창 너머 우산들의 발 밑에도 깔린다. 파랑 우산은 의연하다. 검정 우산도 의연하다. 척하지 않으려면 우산 따위 펴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크고 작은 물방들은 무심하게 지나간다. 함께 가다가 이내 멀어진다. 이럴 바엔 좀 더 많이 왔으면 싶어 진다. 좀 더 먹색이 짙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섯 마리 새가 천변을 따라 낮게 날아간다. 이미 끝났는데 두려움에, 혹은 확인하기도 귀찮아 여전히 몸을 활짝 편 우산들.


리듬이 끝난다. 하나 둘 손에 쥔 무게를 내려놓는다. 아직 무게를 감당하는 이와 섞인다. 차분히 내려앉은 빛이 발아래 드리운다. 찰박, 소리 날까 조심하며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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