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온라인 스터디를 잡아놓은 덕분에 주말 아침, 무거워지는 몸을 일으키게 된다.
"왜 그렇게 계속 공부를 하는 거야? 이제 그만 좀 하고 쉬어. 학생 때 그렇게 했으면 충분하잖아?"
글쎄, 모르겠다. 지금에 있어 마음을 안정되게 해주는 일을 생각해보자면 글쓰기, 적막함, 음악과 같은 보편적인 것들과 더불어 학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생의 5할 이상을 학습하는데 투자해 왔으니 거대한 관성이 생겨 그것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은 동물에게 있어 '당연'한 생존본능이라고 여겨진다.
이제 봄이구나, 생각해 주말에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러 가려고 계획했는데 오전 내 회색 빛 세계를 만드는 하늘이더니 이내 비가 내려버린다. 다행히 앉아있는 이곳은 평온하다. 아무도 없고, 비가 내려준 덕에 어둡고, 2년 전 욕심내어 마련한 앰프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에 더없이 적절한 안정감을 주며 동시에 허전함을 채워준다.
허전함을 느낀다는 것은 스스로 품은 거대한 모순이다. 번잡함과 소음을 싫어해 그리도 사람들이 모인 곳을 피해 다니면서, 동시에 홀로 존재할 때 허전함을 느끼게 되면 도대체, 얘는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고민이 되곤 한다. 주어진 생이란 기다란 평균대 위, 균형을 잡으며 의연하게 걸어가는 '어른'들을 보면 참, 서른 넘는 일생동안 여전히 이리 휘청, 저리 휘정거리는 나는 왜 이리 성장이 느리기만 한 건지, 아니, 애초에 그런 어른들로 성장할 수 없게 정해진, 그냥 다른 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전 스터디가 끝나고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를 읽기 시작했다. 아, 비가 아니라 눈이 돼버린 것 같다. 입자가 굵어 눈에 잘 보인다. 동시에 재즈 음악을 틀어 놓았다. 커피를 타며, 딱히 재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거나 어릴 적부터 품위 있는 집의 귀한 혈통으로 태어나 문화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 클래식이나 재즈를 듣는 것은 아니라는 핑계를 생각해 낸다. 그냥 책을 읽기에 가장 적절하다. 재즈는 대개 연주 중심이고, 혹은 보컬리스트가 있더라도 대부분 '영어'라서 읽는 행위와 글자에 대한 자극이 겹쳐지지 않아 집중할 수 있다. 동시에 적막
함을 없애주어 '난 왜 홀로 이 타향에 와서 친한 이도 없이 귀한 주말을 홀로 보내고 있나'라는 쓸데없이 올라오는 자괴감을 닦아내준다. 좋아하는 카페들이 대개 모두 재즈, 클래식 또는 인디음악을 활용하는 곳이라는 점도 크게 한몫을 하게 된 것 같다.
작정하고 글을 쓸 때, 쓰기 전 소재를 모으고 구조를 생각한다. 오늘 쓰고자 하는 글의 소재는 이것, 이것, 또 이것, 저것이다. 각 소재는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 시간과 이야기가 있다. 소재들을 글로 표현해 내는데 시간을 기준으로 한 순차적인 구조로 할 것인지, 아니면 근래에 한참 유행하고 있는 시간을 넘나드는 평행우주적 관점으로 배열할 것인지를 정한다. 개인적으로, 물론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비선형적 구조를 좋아한다.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은 어쩐지, 대하소설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글을 길게 쓰는 것은 힘들다. 대신 짧은 단락을 가진 소재는 누구에게나 많고 다양하다. 이것들을 읽는 이가 집중력을 흐리지 않고 따라가게 하는 구조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하면 생각보다 스스로 만족감이 드는 글이 아주 아주 종종 나오곤 한다. 물론 대개는 바벨탑을 쌓는 글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눈이 다시 그친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밤이 아닌 시간에 좀 더 어두웠으면, 좀 더 앰프에서 나오는 음악이 밀도 높게 전해졌으면 했는데 말이다. 오늘의 비구름은 낮고 빠르게 지나고 있다. 마저 책을 읽어야겠다. 언제부턴가 한 가지만 하는 것이 지루해져서 잠시 자판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금세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