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지만 나아갈 수 있다?

by Hache

한 젊은이가 조언을 구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방향이 잘 못 됐다고 생각돼요. 주변에서는 그 방법이 맞다고 하지만 전 제 생각대로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되거든요."


"그럼 본인의 생각대로 하면 되잖아요?"


"근데 그게 또, 아깝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요. 주변에서 권유하는 방법대로 이미 5할을 보냈는데 이제 와서 바꾸자니 좀..."


"망설여지는 것인가요?"


"네."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군요?"


"아뇨. 그건 또 아니에요. 그저 현실적인 문제를 동시에 걱정하게 돼서 망설이고 있어요. 제 생각에 확신은 있는데 남은 시간 내에 해낼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 선택했다가 양쪽 다 잃어버리진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도 있어요."


"두 가지 욕구가 상충하고 있네요. 음...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저는 무언가를 선택하라고 얘기해 줄 순 없어요. 저에게 답을 얻고 싶었던 것 맞죠?"


"음... 네... 헤헤... 주변 어른들은 다 틀렸다고 하니깐요."


"삶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요. 그저, 선택하고 나아갈 뿐이죠. 자신이 나아가는 길이 결국 자신의 삶이고요. 답을 주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네요. 한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있겠네요. 들어보세요. 완전한 무중력의 우주공간 알죠?"


"네. 우주에 나가면 그렇게 된다고 하잖아요. 영화에서도 많이 봤고요."


"맞아요. 무중력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처음 상태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우주에 정지상태로 남겨졌다면 끝끝내 정지한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저 그거 알아요. 관성의 법칙이죠?"


"굉장한걸요?"


"하하. 어쨌건 끔찍한 일이네요. 먹을 것도 없을 거잖아요."


"맞아요. 외롭기도 할 것이고요. 어딘가로 어쨌든 가야만 하잖아요, 생존을 위해서요.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음, 그러게요. 무중력 상태이고, 관성의 법칙 때문에 정지상태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음... 휴대용 로켓 같은 것은 없죠?"


"로켓이 있었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죠. 하지만 방금 했던 말에 힌트가 있네요."


"그래요? 하아, 잘 모르겠어요."


"그렇죠. 상상이 안 되는 게 당연해요. 우리가 우주에 살진 않잖아요. 이런 일을 겪지 않기 때문에 대책이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방법이 있어요. 버리면 돼요."


"네? 버려요?"


"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라도 버리면 돼요. 단,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요. 가능한 힘을 세게, 오래 줘서 던져 버려야 해요."


"어? 이거, 알 것 같아요. 아, 뭐였더라..."


"맞아요. 그거예요."


"운동량 보존 법칙! +1 -1 = 0 맞죠?"


"맞아요. 정지해 있다면 운동량은 0, 움직일 수 없죠. 하지만 혼자서도 +1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가진 걸 버리면요. 버리는 게 아깝죠? 하지만 그 대가로 -1을 얻게 됩니다. -1과 +1 중 어느 것이 더 큰 값인가요?"


"하하. 이건 확실히 알아요. 벡터! 그저 방향이 다를 뿐 크기는 같습니다."


"핵심을 얘기해 줬네요. 맞아요. 방향이 다를 뿐 크기는 같습니다. 버리고 같은 걸, 하지만 반대 방향의 것을 얻으면 비로소 우주 미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정지상태를 벗어날 뿐 여전히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또, 그 종착지가 자신이 상상하던 유토피아 일지는 가봐야지 알겠죠. 하지만 적어도 그저 미아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음..."


"너무 의미 심장한 얘기 같이 해버렸네요. 그저 그렇다고요. 제 얘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네. 왠지 생각이 많아지네요. 감사합니다."


---


일요일 아침, 카톡 메시지 하나에 지난 일이 떠올랐다. 뭔가 대단히 인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임이 분명했던 그 대화, 곰곰이 생각해보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저 그때도 내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버려야만 나아갈 수 있다? 아니다. 그건 애초에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한정된 말이다. 많은 경우, 등 뒤의 든든한 '백'이 떠밀어 준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미숙한 청소년, 청년 시절에는 더더욱이나 그러하고 누구도 그것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왜 스스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살아왔을까? 주어진 현실이 그러한가? 아니면 그렇게 정의 내려 버린 것인가? 더 나아가기 위해 나의 것을 모으고, 던지고, 모으고, 던지고, 또 모으고, 또 던진다. 많이 나아왔고, 늘 같은 방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미 머물렀던 방향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충분히 준비가 되면 그땐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많이 지쳐버린 지금은 도움을 받으며 나아가는 것을 원하는 마음이 종종 싹을 틔우기도 한다. 그리고 매번 싹은 뿌리째 뽑힌다.


나에게 질문했던 젊은이는 결국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결론지었고 해왔던 5할의 방향을 그대로 유지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