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거실 하나, 방 두세 개 정도의 아파트 혹은 주택에서 맞아주는 가족과 티브이 소리,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반려 동물까지,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대개는 티브이 소리가 점령하는 공간 속에, 그래도 마주 않아 함께 식사를 하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푸르지오 같은 아파트 광고에 나오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의 그것과 같은 모습들 말이다.
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자연스레 떠올랐던 이미지가 고속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채 빠르게 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는 사실은 일면, 지금에 와서는 애석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가장 마음 따뜻해지고, 몸을 뉘일 수 있고, 어떤 상황에도 의지가 되어주는 최후의 보루, 안전망, 보통 그런 것들이 집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연결이 되는 것일 터인데 나의 경우는 어떤 상황에도 마음 따뜻하게 몸을 뉘일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최후의 보루가 길이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떠올렸으면서도 '집은 이러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며 보편적인 따스함과 연결시키는 이미지를 연상해보려 했으나, 그것이 되지 않았다.
뭐, 길이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것이 고속버스이건, 열차이건, 쉼 없이 지나가는 창 밖 풍경과 지면과의 마찰이 주는 흔들림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그 속에서는, 길어야 두세 시간 정도이지만, 어떤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므로, 딱히 그곳에서 애써 무언가 할 수 있는 환경도 안되므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육체와 정신을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핑계 댈 수 있다). 그저 가만히, 기대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쓰다 보니 한 번 더 안타깝다. 그저 가만히, 기대어 있을 수 있는 것이 세상, 고작 버스 창문이라니 말이다. 현대인들은 많이들 그러려나 하고 별 생각이 없다가도 한 번씩 몸과 맘이 고단할 때는 나도, 버스 창문 말고 다른 의지할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천성이 이러하니 도리 없겠다 싶기도 하고, 평생의 불안함으로 인해 길 위의 감정을 집이라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집과 현실의 집이 일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신기하다고 느낀다. 직장을 가지고서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을 보면 마치 고양이 개 보는 듯 한 느낌이 되곤 한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가 아닌 그저 고전적인 집과 가족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라는 사실 자체가 무척 낯설고 신기하다. 나에게도 그럴 때가 있었나 반문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집도, 학교도, 동아리도,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분명 뇌와 몸이 인간인지라 순간순간 안정감을 느끼는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적당한 마음의 안정을 주는 출근 할 직장이 있지만 출근하지 않는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고 저절로 눈이 떠질 때 일어나는 일,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나와 베이스 음이 낮게 깔린 미디엄 템포 음악을 들으며 마른빨래를 개고 설거지 해 놓은 그릇을 정리하는 일, 커튼을 걷으면 들어오는 빛과 산 위로 올라있는 해, 하늘색 하늘, 이방인이 되어 느슨하게 헤매는 길, 소란스러운 사람과 소란스러운 음악이 없는 카페에서 쓰는 글, 호호 불거나 뜨거움이 가시길 기다려야 하는 뜨거운 핸드드립 커피, 따뜻한 볕에서 잠자는 고양이를 보는 일, 그리고 98%의 무관심과 원할 때만 받는 2%의 관심과 같은 요소들, 떠올리다 보니 무척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보에 지나지 않나 싶다.
삶과 주거, 가족, 직장의 개념이 과거와 크게 바뀌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뭐, 크게 이상할 것도, 애석할 부분도 없다. 그저 그렇게 느끼고 정의 내렸다면 그렇게 살아가면 될 뿐, 나에게 주어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동경하지 말고 그저 늘 그랬던 것처럼 힘을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