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마시고 싶으면 모두 소를 키워야 하나?
인간 남녀가 굳이 함께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크게 두 가지 근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결론 내렸는데, 그 첫 번째는 함께 있음으로 몸과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는 욕구, 두 번째는 집단을 이루고 번식하고자 하는 동물적인 욕구였다.
인간의 이 본질적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인간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구별 각 국가에서는 나름의 제도적 장치로 동물 같은 본능을 가진 인간을 구속시켜왔을 것이다. 21세기 현재에 이르러 국가별로 이 장치와 그에 따른 이후 생활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무엇인지 알아보자.
먼저 한국은 결혼식과 혼인신고라는 장치가 있다. 어차피 다른 제도적 장치가 없으므로 그냥 합쳐서 결혼이라 부르자. 연애하던 두 남녀가 각기 떨어져 살다가 30분의 결혼식을 마친 후 갑자기 각자의 생활패턴을 파괴하며 함께 살기 시작한다.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던 두 사람이 갑자기 누군가의 사위, 며느리가 되어 관습적인 한국 시월드의 제도를 따르도록, 역할놀이를 충실히 하도록 강요받는다. 예를 들어 며느리로서 출산은 당연시되고, 하지 않으려는 의견을 내비치면 기성세대에게 '개념 없는'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같은 경우로서 제사, 종교가 강요된다. 한국의 결혼 이후에 개인은 철저히 짓밟혀 사라진다.
다음은 프랑스다. 이곳은 여러 가지 장치가 있다. 결혼, 동거, 사회연대 계약, 이렇게 세 가지이다. 글이 길어지므로 문단을 나누어 써보겠다.
먼저 결혼은 한국의 그것과 같지만 차이는 시월드의 구속력이 크지 않고 출산, 가족행사, 종교 등에 대해 개인의 의사가 충분히 존중된다.
다음은 동거, 한국인들이 뜨악해하는 이 단어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국가들에서 일반적이며 사회보장제도 안으로 들어와 있어 누구든 자유로이, 원한다면 함께 살며 국가의 보조(돈)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의 기성세대에 속하는 50에서 60세의 사람들 중에도 평생 동거하고 자식을 낳으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비정상회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 사회에서는 누구도 이를 '부도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들이 앞장서 자녀들이 결혼할 때 1, 2년 정도의 동거를 권장하는데 그 이유인즉 연애와 결혼은 생활이 공유되는 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 연애할 때 서로 맞는다고 생각해도 함께 생활하다 보면 맞지 않는 면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클 경우 평생을 함께 하게 되면 거대한 고통이고 미리 결혼을 했을 경우 이혼이라는 절차를 밟게 되므로 미리 검증을 통해 두 사람이 결혼해도 될지를 평가해보라는 것이다. 동거만 해도 결혼에 준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는데 왜 굳이 결혼하려 하느냐, 오히려 이런 의견을 말한다. 시월드는? 없다. 그저 친구와 같이 자연스럽고 평등한 인간대 인간의 교류가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연대 계약, 최근에 생겼고 목수정 씨의 책을 통해 접하게 된(그리고 다큐멘터리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 제도는 결혼과 동거의 중간쯤 되는 장치이며 함께 사는 것이 꼭 남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좀 더 폭넓은 인간이라는 범주로 사회적 장치를 확장시킨 사례이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며 사회보장을 받길 원하지만 결혼이라는 구제도로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또는 동거를 하되 혼인신고와 같은 증서가 꼭 필요한 경우에 이 장치를 이용하게 된다.
인간의 결합과 안정의 본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한국과 프랑스의 제도적, 사회적 장치는 지금까지 읽은 바와 같다. 한국의 결혼이라는 방식은 이미 한 세대 전부터 많은 서방국가들에서 동거라는 방식을 통해 검증 후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사회제도로 인식되고 있으며 오히려 굳이 왜 함께 사는 것까지 그런 제도 안으로 들어가 자유를 억압받으려 하는지를 묻는다. 한국과 같이 앞뒤 없이 일단 결혼 후 함께 살며 두 사람의 차이와 시월드를 '버텨야 한다'가 이니라 충분한 경험과 검증을 통해 결정할 기회를 준다.
(다음 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