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by Hache

꿈을 매일 같이 꾸고 있다. 잠에서 깨면 기억은 모두 사라지며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되는 류의 그런 꿈들 말이다.


꿈에 관해선, 워낙 의심이 많고 현실적인 성향 탓에 평소 거의 꿈을 꾸지 않고, 꾼다고 해봐야 실제의 일들에 대한 각색 정도에 지나지 않기에 내게 꿈은 그저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종종 꿈속의 꿈을 꿔, 그렇다고 꿈속의 물리법칙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긋지긋한 일상의 재현이 깊이를 달리 할 뿐이지만, 그래서인지 더더욱 꿈에서 깨면 이게 진짜 현실인지 십 초 정도 정신을 가다듬으며 확인할 때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당면한 세계의 법칙을 모조리 무시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과 같은 초현실적인 꿈을 꾼다고 한다. 그런 이들의 성장과정이 부럽다. 얼마나 진저리 치는 현실에 장시간 얽매여 살아왔으면 꿈에서조차 그것을 부정하지 못해, 그래도 명칭이 ‘꿈’인데, 그 시간조차도 그저 지긋지긋한 현실을 반복하는 것일까.


“하리는 나중에 뭐가 될까?”


이제 두 살이 된 조카의 미래에 대해 누나와 엄마는 의사, 변호사 같은 이미 수십 년 묵혀 이제 미래엔 더 이상 없을 장래를 말했다. 나는,


“얘는 우주인이 될 거야.”


라고 했다. 이 아이들의 세상은 좁은 지구를 넘어서 있을 거라고. 가족들은 또 한심하다는 눈 빛으로 ‘헛소리 하고 있네’를 연발했다.


사람의 상상이 딱 그만큼이다. 바람도 딱 그만큼. 현재 살만해졌고 남들하고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으면 ‘견딜만한 지옥‘을 ‘그래도 이만하면 천국’으로 포장하며 살아간다. 삶은 원래 그런 거라며 ‘너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라는 얘기를 해준다. 여전히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이지만 어쩐지 가족들의 얘기가, 종교인은 아니지만 인용하자면,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진짜가 돼버릴 것만 같은, 내가 정말로 한국 사회에서 정신 차려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든다.


아직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것이 영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제는 안다. 본시 영속성이 없으면 뭐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친구든, 연인이든, 이상에 어긋나는 면이 딱 하나가 보이기 시작하면 관계의 영원하지 못함을 슬퍼하며 곧장 잘라내고 지워내 왔다. 근데, 알고 보니 영속은 별 의미가 없었다. 내가 살았던 그 찰나만으로, 그곳에서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었다. 영원하지 못하면 어떠랴, 어차피 우린 기나긴 우주의 역사 속 한 ‘점’을 차지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짧은 시간이 될지라도 경계를 넘는 일을 곧 시작해보려 한다. 우주로 갈 순 없겠지. 가능한 많은, 가능한 멀리, 많은 고달픔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넘어보지 않은 나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성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경계를 넘기 시작하면 영화의 그 ‘월터’처럼 더 이상 daydream을 꾸지 않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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