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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lish man in New york Jun 28. 2023

서평: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나이에 다시 읽은 상실의 시대, 아니 노르웨이의 숲

 와타나베의 나이가 되었다. 그가 이제 막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 루프트한자에서 우연히 들려온 “노르웨이의 숲”에 20여년 전 감정의 소용돌이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듯이, 나 역시 책을 읽어가는 순간순간 오랫동안 존재조차 잊고 있던 “젊은 날”의 어리숙함과 미성숙함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몇 번이고 책을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아마도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이 생생함이 지나치게 강렬해 잠시 아득하기도 했지만 절대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고 이 소설이 사랑받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괴이한 실루엣 위에 심오한 글씨체의 표지. 어린 나이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가 나에게 남겨준 인상은 남자기숙사, 특공대, 펠라치오 정도였던 것 같다. 흥미롭거나 인상적이란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사고의 깊이와 경험 모두 젊음의 굴곡을 정통으로 지나가고 있던 와타나베와 크게 다를 바가 없던 그 때의 나로서는 이 소설을 즐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이 시점에 다시 읽은 노르웨이의 숲은 진심으로 고마울 정도로 내 마음속 한 켠 오랬 동안 꺼내 보지 않았던 나의 삶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재현해주었다.


 이처럼 똑같은 책이 이토록 다른 독서 경험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이 “젊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이 “젊음”은 무엇보다 강력한 에너지임과 동시에 누구에게나 특정한 시기에 단 한 번 만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안했고, 무기력했고 또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무르고 혼탁하고 때로는 두 다리를 땅에 온전히 딛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동시에 뜨거웠고 진심이었고 순수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제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게 생생했던 젊음은 모래에 덮이듯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신체가 변하고 호르몬이 변하면서 젊음은 멀어져갔다. 책임이 생기고 사회적 역할이 부여되며 젊음은 희미해져갔다. 어쩌면 반복된 상실속에서 우리의 젊음은 색을 잃어갔는지 모른다. 나오코가 가장 좋아했던 “노르웨이의 숲”, 이 노래가 이미 젊음과 멀어진 와타나베에게 그 시절을 강하게 불러왔듯이, 이 소설은 나에게 그 노래와 동일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 책을 지금 시점에 다시 읽을 수 있어 정말 기쁘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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